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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21230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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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 25:14-30</p>
<!-- paragraph:p0003 -->
<p class="p1">결산할새</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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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므나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는 좀 다릅니다. 우선 화폐 단위가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종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차등 지급하나, 므나 비유에는 종이 열 명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므나 비유는 다 한 므나씩만 분배합니다. 따라서 비유의 성격이나 그 비유가 말씀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다릅니다. 그런데 외경 중에 나사렛 복음이란 게 있습니다. 거기에도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비유는 마태복음과 흡사합니다. 화폐 단위도 같고, 종도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만, 마태복음에는 세 번째 종만 책망을 듣습니다만, 나사렛 복음에서는 세 종 가운데 두 명이 책망을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나사렛 복음에서는 두 번 째 종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고, 세 번째 종은 창녀와 놀아나며 달란트를 탕진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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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어거스틴은 이 비유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주인은 주님, 달란트를 받은 종은 우리 신자들입니다. 주인이 여행을 간 것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것을 의미하고, 주인이 돌아온 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주인이 결산하는 것은 최후 심판으로 풀었습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며 잔치에 참여하라고 할 때, 잔치는 천국을 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것은 지옥이라고 풀었습니다. 대개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주석하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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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문제는 이 달란트 비유가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주인이 세 종에게 균등 배분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배 균등의 원칙, 기회 균등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각각 재능대로” 주인이 달란트를 배분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미 인간 차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인이 돌아와 결산하며, 주님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그냥 들고 온 종의 달란트를 이미 열 달란트를 갖고 있는 종에게 주라고 한 것은 자본주의의 극명한 모순인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처사라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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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그러나 균등 배분을 하지 않은 것은 사람 차별보다는 개인 능력의 차를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재능이 다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일괄 다섯 달란트를 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거야 말로 부당합니다. 역차별입니다. 각자의 능력을 배려해서 맡기는 게 맞습니다. 각자의 개인차를 주인은 사려 깊게 배려한 것입니다. 인간 차별이 아닙니다. 주인이 돌아와 결산하는 대목을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두 종을 똑같이 칭찬하고 치하합니다. “착하고 충성도니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일을 맡기리라.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문자적으로 똑같습니다. 남긴 달란트의 수적 차이에도 주인은 똑같이 칭찬합니다. 비록 개인의 능력에 따라 배분은 달리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똑같이 칭찬하고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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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그런데 이 비유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들고 온 세 번째 종입니다. 이 종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24절 이하입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는 것은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 냉혹하게 결산했다는 것을 보아 굳은 사람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은 날강도라는 뜻입니다. 불로소득을 업으로 삼는 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터무니 없는 오해요 모함입니까? 주인의 반응을 보십시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 종의 다음 말도 들어 보십시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내가 당신의 것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당돌한 말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굳이 잘한 것은 없으나 제가 못한 것 또한 무엇입니까? 라는 뜻입니다. 나사렛 복음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은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창녀와 탕진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나오는 종은 원금을 까먹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신 손에 들려진 원금을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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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세 번째 종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게 없는데도 주인은 그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왜 이토록 주인이 분노하신 것입니까? 오직 하나입니다. 주인이 장사하라고 달란트를 맡겼음에도 이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장사하지 못해 환장한 사람들이란 뜻이기보다는 주인이 뭘 원하는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즉시 가서 그대로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것을 원했습니다. 주인의 뜻에 부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뜻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해석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주인의 의도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종인 주제에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자기 편리한대로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금을 까먹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차라리 주인의 뜻을 받들어 장사하다가 본전을 까먹은 것은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세 번째 종이 장사하다가 원금마저 날렸으면 주인은 똑같이 칭찬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추상같은 심판을 보십시오. 28절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30절을 보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혹독합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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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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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 종은 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을까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는 것은 핑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를 과소평가한 것이 문제입니다. 달란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 은사, 사명, 일정한 책임, 의무, 직분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달란트가 없다거나 또 받은 달란트를 우습게 여겨 방치해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 위기의식이나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이게 정말 심각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다 종이고, 주인이신 주님은 2012년에도 달란트를 재능에 따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달란트를 받자마자 가서 열심히 가서 장사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아무 의식 없이 깔끔하게 땅에 묻어둔 채 어느덧 연말을 맞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희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랬을 겁니다. 수익보다는 손해가 두려운 겁니다. 차라리 원금이라도 지키자는 겁니다. 희생이나 모험이 두려워 고의적으로 회피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도 장사도 헌신 없이, 결단 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주인이 다시 돌아와 결산한다는 것을 반신반의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린 겁니다. 본문을 보면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랜 후라는 게 일종의 함정이었을 겁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최후 결산에 대한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에 대한 주님과의 결산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실감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성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곧 오신다고 하면서도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채 아무 고민 없이 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오셔서 결산하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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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올 한 해 여러분은 자신의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개인 차가 있지만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당당히 주님과의 연말결산에 나서실 수 있습니까? 자주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1년 단위의 연말결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연말결산과 인생 최후의 심판은 절대 별개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연말결산의 연장이 최후 심판입니다. 매년 이루어지는 연말결산의 결과가 착하고 신실한 종이면 내 인생 최후의 결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연말결산의 결과가 악하고 무익한 종이면 최후 결산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연말결산과 최후 결산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주인의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매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부디 여러분은 다 주님의 뜻을 깊이 헤아려 주님의 뜻에 최선으로 응답하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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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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