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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욥 42:12-17) 마지막편

20121229

말년

욥 42:12-17


비극이 닥칠 때 우리 믿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빚으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의 삶의 환경을 조성하시고 간섭하시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고유한 섭리요 권리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닥친 시련과 아픔에 대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깨닫는 일도 중요합니다. 내 삶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신비 말입니다.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절)고 했습니다. 욥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도 신비 그 자체입니다.


처음보다 더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12절).

하나님은 욥의 말년을 재앙 이전 보다 더욱 복 되게 하시고 창대케 하셨습니다. 성경은 악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6)고 했지만 정직한 자에 대해서는 <그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시 37:3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의 말년을 반드시 위로가 더 넘치는 삶으로 만드시고 환난 당하기 이전보다 더 형통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극심한 곤경과 역경 가운데서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한 자의 형편은 어떻든 결국은 다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잘 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욥의 경우도 그 모든 소유를 환난 이전보다 갑절이나 더 많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가축, 즉 양과 낙타, 소와 암나귀의 수가 정확히 환난 이전(1:3)에 비해 갑절이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소유들도 가축에 비례해 다 크게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소유만으로도 욥이 동방 제일의 부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들 딸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13절).

욥이 당한 환난 중 가장 처참했던 것은 역시 그의 모든 자녀들이 한 자리에서 몰살당하는 재앙이었습니다(1:13-19).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이전과 동일하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이 다른 재산처럼 갑절이 아닌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실은 갑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죽은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영원히 소멸된 것이 아니고 천국에 먼저 가 영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욥에게는 그들마저도 다 소중한 자식에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15절). 그리고 욥이 그 아리따운 딸들에게도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다>(15절)고 합니다. 나중에 다시 주어진 자녀들을 통해 욥의 말년이 그 만큼 더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뜻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손자 사 대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16-17절).

욥은 장수했습니다. 그가 몇 세에 환난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환난 후에도 14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그의 후손들을 사 대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수는 갑절이 아니었지만 손자들은 갑절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욥은 천수를 다하며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린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에 환난의 날에는 화도 나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빨리 죽여 달라며 떼를 썼지만 지금은 하나님 곁으로 가기를 원하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엘리바스가 그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격려했던 것처럼 <장수하다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 올림같이 마침내 무덤에>(5:26) 이른 것입니다. 길고 풍성한가 하면 누구보다도 파란이 많았던 욥의 삶은 그야말로 그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새로운 가족과 갑절로 불어난 소유뿐 아니라 장수의 은혜까지 누리며 살다 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과 생애도 욥처럼 말년이 아름답기를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