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엑케 호모(Ecce Homo!)

<엑케 호모>란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의 라틴말로 예수님을 재판할 때 빌라도가 한 말입니다. 니이체는 이 말을 차용해 자기 자서전의 표제로 삼았습니다. 빌라도는 주후 26년 제5대 총독으로 유다에 부임해 10년간 재임한 로마제국의 관리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그는 절대 굽힐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으며 폭정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재판도 없이 죄수들을 처형하는 등 끝없이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고발장이기 때문에 순수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엽기적인 얘기, 즉 자주 봉기하는 갈릴리 사람 몇을 본보기로 살해해 그들의 피를 성전 제물에 섞었다는 기록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모함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쨌든 빌라도의 예수님 재판 장면을 한 번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 고소하자 빌라도가 주님의 행위를 법에 비춰 봅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혐의점이 없어 그 고소를 기각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더욱 공세를 취합니다. 자칫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한 기세자 빌라도가 당황하며 즉각 후퇴합니다. 주님을 다시 심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뭔가 구속할 꼬투리를 잡자는 겁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합니다. 그래서 다시 무죄를 선언하는데 유대인들은 극도로 흥분했고 이미 통제 불능의 사태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빌라도는 또 하나의 카드를 제시합니다. 소위 정치적인 협상을 꾀한 것입니다. 즉 주님을 일단 죄인으로 규정하고 대신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거부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융화책을 시도합니다. 주님께 왕복을 입히고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운 후 군중들 앞에 끌고 나와 온갖 희롱과 모욕의 대상을 만듦으로써 적당히 무마해 보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곧 유대인들이 친 최후의 그물에 걸립니다. <이 사람을 석방하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를 놓아주면 황제를 반역하는 것이다!> 이제 빌라도는 자기가 황제의 충신임을 증명해야 할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주님을 십자가형에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 유대 군중들의 충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황제의 충신으로 남기 위해 제국의 법, 황제의 법을 유린하고 모독했으며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유대 군중들의 악의를 대행한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빌라도의 심판을 받으시며 도리어 정치권력의 허구를 심판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심판하며 실은 비겁한 자신을 심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