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5 성탄, 언제 어디서 어떻게?(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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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눅 2:1-7
성탄, 언제 어디서 어떻게?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무한하신 영광과 밝은 빛이 여러분 개인 심령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첫 성탄을 기억하십니까? 어디서 이루어졌습니까?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인류 역사는 주님의 성탄과 탄생을 기점으로 주전과 주후로 나뉩니다. BC와 AD로 나뉩니다. 올해가 2012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12년 전에 주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역사의 관점에서 그런 것이고, 성경은 주님의 탄생 시점을 좀 더 다르게 규정합니다. 주님의 족보가 복음서에 나옵니다(마태와 누가). 마태복음 1장 족보를 보겠습니다. 17절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주님의 족보를 이렇게 열네 대 단위로 구분해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족보를 인위적으로 열네 대 단위로 구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완전수는 7입니다. 14는 완전수가 두 번이나 겹친 수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완전한 수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시 7이 겹친 수인 14가 세 번 반복됩니다. 우리 민족도 삼 세 판을 좋아하는데 유대 민족도 삼 세 판을 좋아합니다. 한 번은 왠지 억울하고, 두 번은 아쉽고, 세 번은 해야 그 승부에 승복합니다. 우리는 묵찌빠를 해도 그렇고, 윷놀이를 해도 삼 세 판입니다. 주님의 성탄 시점을 보십시오. 우리는 단순히 2012년 전에 탄생하셨다고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완전수인 7을 두 번 겹쳐 14를 만들고, 그 14을 삼 세 번 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길일(吉日)에 주님이 성탄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괜히 지금으로부터 2012년 전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전체 역사를 꿰뚫어 보실 때 14대 세 번이 가장 완전한 날이라는 겁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주님이 성탄하신 날이 인류사 최고의 길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성탄은 시간적으로나 시기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날이었습니다.
다음은 성탄의 현장입니다. 우선 베들레헴입니다. 여기는 다윗의 동네입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태어났고, 다윗도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후손들의 집성촌입니다. 다윗 가문의 원적지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기에 마침 그때 나라에서 호적하라는 명이 떨어져서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갈릴리에서 다윗 가문의 원적지인 베들레헴으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기에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살던 나사렛에서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적령으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인데, 이것 조차도 우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700년 전인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하게 예언이 적중한 것입니까. 그것뿐만 아닙니다. 베들레헴은 <집>이라는 히브리말인 <벧>과 <떡>이라는 말인 <레헴>의 합성어입니다. 즉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말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이 당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생합니다. 주님이 생명의 떡이시기에 당연히 떡집에서 태어나는 게 맞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용의주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이며 경륜적 사건입니다. 주님이 생명의 떡이시기에 떡집이라 이름하는 베들레헴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 좋아 떡집이지 주님은 구체적으로는 떡집인 베들레헴의 외양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를 요람 삼아 성탄하셨습니다. 성화에 보면 외양간이 목가적입니다. 낭만적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의 마굿간은 가장 천한 곳입니다. 춥고 척박한 곳입니다. 우리가 다 힘든 시대에 태어나 어렵게 살아왔으나, 우리 가운데 아무리 어렵게 태어나도 외양간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소 여물통을 요람으로 삼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도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리아에게 산통이 오는데도 여관에서 방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마굿간에 들어가 급하게 출산했습니다. 이게 실수로 우연히 주님이 구유에서 성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조차도 실수가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왜 주님이 비천한 외양간 성탄이 구속사적이며 필연의 사건입니까? 세례요한이 주님을 처음 뵙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희생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성이 투명한 세례요한이 주님을 턱 보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보였다는 겁니다. 주님은 양이십니다.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오셨습니다. 이게 주님의 정체성입니다. 양이 안방에서 태어날 일이 있습니까? 양은 외양간,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희생양인 존재에 걸맞게 주님이 외양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필연이지 실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외양간 탄생 사건을 통해 이미 주님의 최후 운명을 감 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미리 봐야 합니다. 외양간 탄생이라는 계시 사건을 통해 ‘아하! 저 분이 우리 죄를 지고 가실 하나님의 희생양이시구나!’ 해야 합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대속해서 희생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외양간에서 태어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필연적이며 계시적이고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다음은 어떻게 주님이 오셨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아기로 오셨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2장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여러분, 주님이 왜 아기로 오셨을까요? 어차피 주님은 정상적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에서 자연적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요셉이 있었음에도 마리아가 요셉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잉태하였습니다. 어쨌든 초자연적 방법으로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아기로 오셨을까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보십시오. 몇 세로 태어났다구요? 한 살, 두 살입니까? 아담이 처음 태어났을 때 몇 살이었습니까? 에덴을 관리하게 하셨고, 하와와 결혼하게 하셨으니까 아마 20대로 태어났을 겁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청년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릅니다. 과학자들이야 당연히 아담을 보고 20년 전에 태어났다고 했겠지요? 과학자들은 무조건 톱으로 나무를 베고 나이테를 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한 시간 전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20살짜리 아담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실제는 이렇게 다릅니다. 과학적인 정답은 20년 전입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만, 실제는 하나님이 1시간 전에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담처럼 청년으로 태어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기적적으로 오신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구차하게 그 열악한 환경에서 어린 아기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우리 인생의 진정한 선구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하늘에만 계시다가 20세, 30세로 태어나 ‘내가 메시아다’ 라고 하실 분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게 가능하였지만, 역사의 수챗구멍으로 오셔서 우리의 애환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애환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주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 한계, 모순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무한한 공감으로 그것을 다 접수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구자이십니다.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보다 더 처절한 환경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정에 통달하십니다. 얼마든지 아기로 오시지 않아도 되셨을 분이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통해 이 땅에서 사셨던 이유는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영원하고 유일한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주님은 아기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주님만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입니다.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마태복음 1장으로 다시 갑니다. 16절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의 족보인데 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아담의 후손, 남자의 후손은 다 태생적으로 운명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원죄를 뒤집어쓰고 나옵니다. 공자도 부처도 다 아담의 후손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여자의 후손입니다. 죄 없이 흠 없이 티 없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한 절대 원죄의 유전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대물림되는 원죄의 숙명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나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께는 죄가 없습니다. 주님은 희생양으로 오셨습니다. 희생양에서 가장 중요한 게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을 데리고 제사장에게 가면 제사장이 양을 검사했습니다. 흠과 티가 있는 양은 희생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하며,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까? 죄인이 죄인을 구원합니까? 주님은 희생양으로 외양간에 오셨기에 흠과 티가 없는 분이어야 하며, 그래야만 우리 죄를 대속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주님만이 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대물림 되는 죄의 유전에서 자유로워야 우리를 위해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년 성탄절을 보냅니다. 절대 맹목적으로 연례행사 치르듯 성탄절을 보내면 안 됩니다. 성탄의 깊은 신비를 많이 생각하시며 진심으로 감사하시고 영광과 찬양을 바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이 성탄의 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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