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리워야단의 늠름함(욥 41:12-17)

20121215

리워야단의 늠름함

욥 41:12-17


리워야단은 기괴할 정도로 큰 몸집을 가진 동물이지만 또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잡혀 늠름하고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눈에는 괴물인 리워야단 조차도 귀엽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리워야단을 해부학적으로 소상하게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이란 여러 부분들로 나누어 찬찬히 살펴 볼 때 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드러나고 또 그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누가 재갈을 물리랴

<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그것에게 겹재갈을 물릴 수 있겠느냐>(13절).

리워야단은 얼핏 보기에도 무시무시해서 감히 다가갈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누가 감히 가까이 접근해 그것의 겉가죽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피거나 말처럼 재갈을 물려 끌어오거나 또 그것의 턱을 벌려 둥근 이틀을 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누구도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진노의 입술을 봉할 수 없으며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말씀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입술에 재갈을 물리지는 못합니다. 부디 리워야단 앞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는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을 통감하며 더 더욱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권세에 승복하시길 빕니다. 계속해서 리워야단을 들어 욥과 논쟁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르게 헤아려 보십시오.


누가 턱을 벌리랴

<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그의 둥근 이틀은 심히 두렵구나>(14절).

사실 욥은 지금 자신의 삶 가운데서 처절하게 리워야단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말씀하고 계신 리워야단이야 말로 욥이 실제 당하고 있는 고난과 시련에 다름 아닙니다. 욥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고난이 지금도 그의 존재와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출현하셔서 이 우주에서 리워야단을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심을 밝히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욥이 만약 리워야단을 이길 수 있다면 그때는 하나님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라며 믿음이 과연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계십니다. 즉 리워야단의 위협적인 모습 앞에서도 꿋꿋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순전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또 리워야단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그의 턱을 벌리려 할 때는 필연적으로 패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리워야단의 큰 용맹과 늠름한 모습을 보고 도리어 그 쪽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리워야단을 보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고 더욱 주께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리워야단을 제압해 주시기를 바라며 끝까지 주님 편에 서는 것이 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누랴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17절).

욥은 여전히 리워야단 앞에 서 있습니다. 실은 우리도 지금 다 리워야단 앞에 있으며, 또 그런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엄숙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저 리워야단을 이길 수 있느냐?> 그러자 욥이 대답합니다. <저 비늘을 보십시오. 저 봉인한 듯 굳게 닫혀 있는, 서로 달라붙어 한 가닥 바람조차도 지나가지 못할 만큼 촘촘한 비늘을 어떻게 비집고 뚫을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칼이나 창으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려느냐? 리워야단의 노예가 되려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겠느냐?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은 리워야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잠시 잠깐 리워야단이 우리를 위협하도록 허락하신 대는 다 하나님만이 아시고 의도하신 깊은 경륜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부디 리워야단의 압도적인 두려움 앞에서도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주님만을 붙드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