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바다 괴물(욥 41:1-7)

20121213

바다 괴물

욥 41:1-7


<리워야단>이란 무서운 바다 괴물 혹은 바다 양서류 생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아마도 지중해에 서식한다고 믿는 심해 괴물을 뜻하는 말인 듯 한데 성경은 이 단어를 때로 이스라엘의 원수들(사 27:1)을 가리키는 말로서, 혹은 애굽(시 74:13-14)을 가리키는 단어로도 사용하였습니다. 고대신화에 나오는 리워야단은 머리가 많이 달린 괴물로 물을 다스리고 인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생물인데 성경의 리워야단은  학자들에 따라 바다 공룡으로, 또는 고래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악어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그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시 104:25-26).


낚시로?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1절).

하나님이 욥에게 리워야단을 다스릴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아주 거대하고 힘이 세며 두려운 수중생물인 리워야단에 관해 묘사하므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달아 자기가 하나님께 그토록 대담하게 대들었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스스로 낮아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가 그렇게 강하고 능력이 있다면 어디 이 리워야단을 굴복시키고 길들여서 그것의 주인이 되어 보라고 도전하신 것입니다. 무슨 수로, 무슨 재주로 감히 그 거대한 바다 괴물을 물고기 잡듯 낚시질로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리워야단이 무엇이든, 그게 악어든 고래, 혹은 바다 공룡이든 힘이 세고 사납고 무시무시하므로 그들 속에 곧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밧줄로?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2절).

그렇습니다. 욥에게는 리워야단을 속일 만한 미끼도 없고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낼 만한 밧줄도, 아가미를 꿸만한 가시채도 없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너가 과연 바다 괴물을 통제할 수 있는가입니다. 대답은 역시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감히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게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앞 장에 등장했던 하마와 더불어 그 어떤 인간도 결코 다스리기 쉽지 않은 무서운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이런 피조물조차 제대로 다스릴 수 없으면서 대체 무슨 근거로 창조주를 대적하여 나섰는지를 묻고 계신 겁니다. 인간은 다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들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주님은 이미 우리들의 그 무기력함을 밟히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존 자체를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더 이상 생명을 지속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창으로?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7절).

리워야단은 장사꾼들이 포획하여 돈을 벌 수도 없습니다(6절). 죽일 수도, 아무리 창으로 찔러 봐야 그 가죽을 뚫을 수도 없고 작살을 던져봐야 그 머리에 꽂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큼 거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리고 아무리 용감한 사람도 기절할 만큼 압도 당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앞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조차  우리의 존재란 그야말로 먼지 같고 지렁이에 불과함을 겸허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위대하시고 우주를 통제하시고 자연만물을 제어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을 시인하고 수용하는 일에 보다 용감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무가치함과 무능함을 깨닫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고 전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사 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