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는 하마(욥 4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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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풀 먹는 하마
욥 40:15-24
<베헤못>(behemoth)이란 <덩치 큰 짐승>, 즉 하마나 코끼리 혹은 황소 심지어는 공룡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욥에 대한 심문이 계속됩니다. 욥은 지금 이 위압적인 초식동물을 생각하며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풀 먹는 하마를 통해 오직 자신 만이 창조주시며 이 강하고 거대한 피조물의 진정한 주관자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마의 크기를 생각해 보라.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의 꼬리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막대기 같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16-19절).
이토록 거대한 짐승이 육식을 하지 않고 초식을 한다는 사실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마나 코끼리 같은 짐승이 풀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포식자라면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그 동물의 희생물이 되겠습니까? 작고 약한 들짐승들은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을 보면 피하고 달아나지만 하마나 코끼리에게는 결코 위협을 느끼고 도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본래는 육식이 아니라 채소나 열매, 씨앗 같은 곡류가 주식이었습니다(창 1:29). 사실 말이나 소, 하마나 코끼리 같은 큰 짐승들을 보더라도 굳이 육식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수많은 질병이 육식과 무관하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육식은 자제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풀 먹는 하마를 생각하며 우리의 식습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마의 영역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 늪 속에 엎드리니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21-22절).
초식동물인 하마는 밤에는 들판을 활보하며 풀을 뜯지만 낮에는 호수나 강, 늪에 몸을 잠그고 연 줄기 아래서 쉽니다. 요단강이 불어 그 입에까지 미칠지라도 놀라지 않고 그 크기와 힘 덕분에 세찬 격류에도 늠름히 버팁니다. 하마는 거대한 양의 물을 삼킬 수도 있고 요단 강물을 다 마실 듯이 들이키기도 하지만 이는 다 그 짐승의 거대한 몸짓과 활동 반경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구사한 표현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자들은 종종 자기 자신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을 평안하게 해 주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평안합니다. 갈대 숲 속과 늪, 시냇가의 버드나무들은 다른 이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거나 해도 끼치지 않지만 하마 같은 큰 짐승들에게도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합니다. 자연과 이 거대한 초식동물들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웁시다. 서로를 위협하지 않고 공생하는 법을 일러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경의를 표합시다.
하마의 힘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24절).
하나님은 이 짐승이 물 밖에서 쏘아 보고 있을 때 누가 능히 그것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욥에게 물으십니다. 이 질문의 답은 당연히 아무도 그 강한 짐승을 잡거나 코를 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어떻게 해서 이 짐승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감히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명백한 교만이요 자기기만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더 철저히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마를 등장시켜 욥에게 깨달음을 주시려한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다 창조주 앞에 엎드리며 그분이 명하신 질서에 순종하듯 그렇게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는 게 사람의 참된 도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믿는 자가 하나님께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곧 그의 영적인 지식과 지혜의 결핍을 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