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vs 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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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로 음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이번 WBC는 그야말로 신선한 청량제였습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우승 이상의 기쁨과 감격을 맛본 게 사실입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잖습니까? 이승엽과 박찬호 선수가 각각 소속팀에서의 성적과 입지 때문에 출전을 포기할 때만 해도 마치 시댁 눈치를 보느라 친정을 돕지 못하는 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듯 내심 불안해했는데, 웬걸 4강을 넘어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난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감격에 이은 속편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강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일본의 저력은 무서웠습니다. 우리나라 투수들과 야수들이 매회 위기관리를 잘해 실점을 최소한으로 막긴 했지만 일본은 확실히 우승을 가져갈 만 했습니다. 하기야 일본은 인프라나 선수층에 있어서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 야구팀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가 늘 <실력>이나 <기량>보다도 <기적>이니 <이변>이니 <돌풍> 혹은 <정신력>, <투지> 같은 말로 표현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단순한 숫적 대비가 무의미하다 하더라도 성인 야구의 예비 구단이라 할 수 있는 양국의 고교 야구팀이 53 vs 4천 163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잖습니까? 고교선수 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1천 500 vs 15만입니다. 전천후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서는 필수라는 돔 구장도 일본은 6개인데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계량적 전력만 봐도 우리가 어떻게 일본과 맞붙어 대등한 결승전을 치룰 수 있었는지가 그저 불가사이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고교야구 53개 팀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에 있고, 그런 현상은 중학교, 초등학교로 내려갈수록 더 심해 이미 상급학교들의 선수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10년 이내에 선수가 없어서 프로야구 8개 구단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사태까지 올 것이라고 하니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3년 전 WBC 제1회 대회 때 일본의 이치로 선수가 <앞으로 30년간 한국이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가 한국 팬들로부터 뒈지게 욕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아니라 10년 내에 이치로의 그 발언이 우리의 현실이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래도 국제야구연맹이 발표한 세계 랭킹 제2위로 일본(3위), 미국(4위) 보다도 순위가 앞서 있지만 야구 꿈나무들의 사정이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런 지위와 수준을 지켜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저 이번 WBC 대회가 큰 국제무대에서 일본과 우승을 다툰 마지막 경기가 아니길 바랄 뿐이고, 이번 대회에서의 선전이 마지막으로 타오른 우리 한국야구의 <최후의 불꽃>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교회 걱정이나 하라고 하면 할 말 없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