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2m 다말의 모험(창 38:6-30, 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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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2m
창 38:6-30, 마 1:1-6
다말의 모험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사람들은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성스러운 얘기만 나올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뜻 밖에도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온갖 인간사의 추악한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성경은 치부한 이야기들을 감추려 하지 않고 다 까발립니다. 마태복음 1장만해도 예수님의 족보인데, 예수님 족보라고 하니 예수님 조상들이 얼마나 훌륭할까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 족보에서 특이한 점은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유대인 족보에 여성이 나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족보에 여성들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족보에는 놀랍게도 여성들이 나옵니다. 마리아까지 다섯 사람이 나옵니다. 아주 이례적입니다. 그런데 더 경악할 사실은 이 여인들이 마리아 빼고는 이방인이거나 그 삶이 모범적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이 거룩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게 됐을까요? 오늘은 다말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3절을 보면,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합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야곱의 가계가 넷째 아들을 통해 유지되는데, 유다가 다말에게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그럼에도 유다와 다말의 관계는 부부지간이 아니라, 본문 창세기에서 봤듯이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입니다. 세상에 이런 망측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시아버지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이런 패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본래 유다는 엘, 오난, 셀라 이렇게 셋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장남 엘이 다말과 결혼해 자손 없이 죽습니다. 예수님 시대까지 존속했던 이스라엘의 혼례법에 의하면,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에게서 형의 자손을 봐야 합니다. 시형제 결혼법입니다. 아직도 중동 쪽에는 이런 전통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엘이 자식 없이 죽자 둘째 아들 오난을 다말에게 줍니다. 그런데 오난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형수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봤자 호적에는 형의 자식으로 올라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난은 고의적으로 체외사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자 오난마저도 하나님이 죽입니다. 두 번째 남편마저도 잃게 된 다말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시아버지 유다의 특단의 조치가 내려집니다. 아직 막내 셀라는 어리니까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합니다. 유다는 막내 아들마저도 잃을까봐 다말을 격리시킵니다. 결국 다말은 친정으로 갑니다. 그런데 친정으로 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시아버지가 시댁으로 불러 주지 않습니다. 벌써 여러 해 지나 자기 시어머니도 죽습니다. 셀라도 그 사이에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빨리 자신을 불러줘야 하는데, 부르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말이 기막힌 소식을 접합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양털을 깎으려고 친정 근처인 딤나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래서 다말은 대담한 계략을 세웁니다. 이건 오늘 설교제목처럼 모험이 아니라 목숨을 건 도박이었습니다. 다말은 입고 있던 과부의 복장을 벗어 던지고, 아름다운 옷에 너울로 얼굴을 가린 채 요염한 자태로 성문에서 시아버지 유다를 기다립니다. 원래 다말이란 이름의 뜻은 종려나무라는 뜻입니다. 다말이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다말을 그린 성화가 여러 점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성문을 지나가던 시아버지 유다가 다말을 창녀로 알고 접근합니다. 본문 창세기 38장 16절 이하입니다.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다말의 계략은 아주 치밀했고 성공적이었습니다. 결국 시아버지인 유다와 관계를 맺어 바라던 대로 단 번에 임신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습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유다가 당장 사람을 보내 며느리의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당장 그 간음한 며느리를 끌어다가 율법에 따라 화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 앞에 끌려와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으나, 이것 하나는 확인해 주십시오. 저는 바로 이 물건의 임자로 인해 임신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시아버지 유다가 맞긴 담보물을 내놓습니다. 사실은 이튿날 유다가 염소 새끼를 끌고 와서 담보물을 회수하려고 했는데, 다말이 자취를 감추어 담보물 회수를 못했던 겁니다. 며느리 다말이 자기의 인장과 지팡이와 끈을 내놓으며 뱃속의 아이가 당신 아이라고 합니다. 비로소 유다가 크게 뉘우치며 네가 옳았다고 합니다. 내가 막내아들 셀라를 주지 않자 그렇게 해서라도 이 가문의 후사를 얻으려고 했구나 하면서 며느리의 극단한 처사에 승복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패륜의 극치아닙니까? 그럼에도 이 여인이 엄연히 주님의 족보에 올랐고, 그 불륜의 아들 베레스가 야곱과 유다 지파의 계보를 잇습니다. 베레스가 다윗의 10대조가 됩니다. 다윗의 가계에서 메시아가 오십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말이 이렇게까지 모험하고 도박하며 패륜을 불사하며 유다 가계를 고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통해 이어지는 그 복의 약속이 유다의 가계를 통해 계승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 가계에 남기를 원했고, 자신이 그 계보의 주자가 되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남편을 둘이나 잡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끝까지 참아내며, 결국 시아버지까지 공략했습니다. 기어이 그 씨를 받아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다말로서는 어떻게든 후사를 얻고 유다 가문에 남는 길은 그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다말은 마치 그녀의 시조부인 야곱과도 같습니다. 야곱도 형과 아버지를 기만해서 형의 장자권을 극적으로 훔칩니다. 말도 안 되는 패륜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걸 접수하십니다. 왜냐면 구원의 계보에 서고, 하나님 약속의 승계자가 되는 일에 저주를 자초하는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모험과 도박을 하겠다는 극단한 믿음을 접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대책 없는 믿음 앞에서 하나님이 승복하신 것입니다. 다말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정말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비상한 도박입니다. 다말의 도박은 절대 시아버지에 대한 보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야곱 못지않는 필사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불륜, 패륜보다 저주와 죽음을 무릎 쓴 믿음에 감복하신 것입니다. 헌금을 하기 위해 절도나 강도짓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이 숭고하다고 과정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다말 사건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구원의 반열에 서고, 메시아의 계보에 오르는 일이야 말로 우리의 절대적이요 궁극적인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게 불륜이 아니라 패륜이고, 인륜뿐 아니라 천륜을 범하는 것이라 해도 구원의 반열에 서는 것은 그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말은 구원에 환장한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었고 저주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 성탄의 계절에 다말의 목숨 건 도박과 모험을 깊이 생각하십시다. 구원의 반열에 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메시아의 계보에 오른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사색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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