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325w: 히브리서 강해 29(히 11:32)

2009년 3월 25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29
본문: 히 11:32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몇 주째 같은 본문을 보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다윗을 공부했습니다. 이번엔 사무엘 차례인데, 하지만 오늘은 미루어 놓았던 인물입니다. 고난주간을 위해 미루어 놓은 인물인 이삭을 봅니다. 아브라함을 공부할 때 이삭을 언급했지만, 별도로 다루는 게 좋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선진 가운데 가장 주님을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그림자요 주님의 예표입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내용 구성을 보면 1-11장까지는 창조와 바벨탑 이야기가 나오고, 12-50장까지는 4사람의 족장이야기인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이삭은 아버지보다 5년을 더 살았습니다. 야곱은 147세까지 살았고,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는 충격을 받고 옥고를 치러서 그런지 11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 중에 성경 편집자가 지면 안배를 할 때, 뜻 밖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14장을 안배했고, 야곱과 요셉에게는 각 12장씩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가장 오래 살았음에도 달랑 1장만 안배를 했습니다. 창세기 26장 한 장밖에 없습니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생애를 단 한 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만큼 평범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에 비해 특별한 게 없다는 얘기인데, 상대적으로 이삭은 순탄했습니다.

편의상 이삭의 일대기 중 유년-청소년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시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이때 이삭의 나이 15-16세 때입니다. 이런 아들을 부위별로 태워 번제로 바치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새벽 일찍 일어나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15-116세였습니다. 백발성성한 아브라함이 자기 심장, 눈동자 같은 외아들 이삭을 잡아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 이삭은 나뭇단을 지고 오릅니다. 그런데 이삭이 생각하기를, ‘왜 이번에는 희생 제물, 희생양이 없을까?’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버지, 어째 제물이 없습니까?’하고 묻습니다. 말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째집니다.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창세기 22장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데, 아들을 결박하기 직전에는 아브라함이 아마 아들에게 고백했을 겁니다. ‘오늘은 어린양이 아니라 네가 대신 죽어야겠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경을 보아서 알지만, 어디에도 이삭이 반항하거나 항의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께 아브라함도 항의하지 않았지만, 이삭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아비가 자기를 잡아 하나님께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겠다고 하는데도, 다 큰 아들이 일말의 저항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같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노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이삭은 순순히 따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서 제단 위에 누이고, 먼저 목을 따서 피를 뽑기 위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긴박한 순간에 하나님이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가 독자도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믿노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순종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의 아들 이삭의 순종도 대단합니다. 힘으로 해도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를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불가사의할정도로 저항하지 않고 아버지의 칼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4명의 족장 중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이삭입니다. 정말 이삭은 주님의 모형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모습과 이삭의 모습이 얼마나 닮았습니까? ‘나의 원대로 마시고 그저 아버지의 원대로 하라’는 주님의 그 처절한 순종과 목을 따 죽이겠다는데도 아버지께 순종한 이삭이 판박이입니다. 주님이 죽음의 쓴 잔을 드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과 사흘길을 가서 모리아 산에서 되살아난 이삭의 운명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삭이 주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모두가 제 맘대로 사는 이 시대에 이삭의 이 바보 같은 순종, 복종이 돋보입니다.

다음은 이삭의 장년기입니다. 창세기 24장 63절을 보면,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은 야곱처럼 밤을 새워 하나님과 씨름 한 적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을 묵상하며 사색하며 살았던 경건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일이 닥치면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들에 나가 묵상했는데, 이때는 이삭이 결혼 문제 때문에 기도한 듯합니다. 이때가 이삭 나이 40세입니다. 늦은 때입니다. 그럼에도 이삭 보십시오. 자기 임의로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래서 현숙한 아내 리브가를 만납니다. 이삭은 언제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창세기 25장 21절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때 이삭 나이 60인데, 그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은 이때 이미 아들만 12명이었습니다. 아버지도 100세까지 자식이 없었는데 그 아들 이삭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인간적인 방법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20년이 아니라 10년도 못 참았는데, 이삭은 결혼한 지 20년을 기다립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로 인해 얼마나 가족사가 불행해집니까? 그런데 이삭은 20년을 기도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이삭은 절대 자기 생각이나 판단대로 처신하지 않습니다. 이게 이삭의 신앙이며 경건이고 영성이었습니다. 여러분, 말과 입으로만 믿지 마시고 이삭처럼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기만의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삭의 노년기입니다. 이삭의 특기는 우물파기입니다. 우물파기는 이삭이 기네스북에 오를 감입니다. 중동에는 물이 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일생 동안 단 하나의 우물도 못 파는데, 이삭은 무려 7번이나 옮겨 다니며 우물을 팠는데, 파는 우물마다 생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면 왜 이삭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우물을 팠습니까? 한 번은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어 그랄 땅으로 갔는데 그곳은 블레셋 지역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100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이 시기해서 힘들게 판 이삭의 우물을 메우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이삭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다른 곳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먼저 우물부터 팝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역시 생수가 터졌습니다. 그러자 그 샘을 차지하려고 원주민들이 또 다시 시비를 겁니다. 이삭은 이번에도 아무 저항 없이 그 우물을 내주고 거기를 뜹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려 7번이나 했습니다. 물론 이삭이 힘이 없어 그렇게 당한 게 아닙니다. 창세기 26장 16절을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그랄 왕 아비멜렉도 자기보다 이삭이 더 강성하다고 한 겁니다. 이만큼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신 겁니다. 이삭의 온유와 겸손이 주님을 빼닮았습니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했습니다. 주님처럼 이삭은 악을 선으로 이긴 사람입니다. 번성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삭은 마지막 정착지를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 땅이 넓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할 것(마 5:5)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을 보면, 지금 땅 두 세평 차지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예수님은 땅 끝까지 차지하셨습니다. 이삭도 온유해서 평화를 사랑해서 넓은 땅을 차지했고, 번성했으며 강성했고 장수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가 온 땅을 지배할 듯하지만 오히려 토끼 같은 것들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합니다. 이삭이 부럽지 않으십니까? 이삭을 많이 닮으십시다. 여러분도 르호봇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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