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너무나 엽기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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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너무나 엽기적인 …
김지하가 <안>을 두고 <깡통이다. 어린애 같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눈에도 <안>이 처음부터 너무 순진해 보여 <저게 끝까지 갈까? 상처투성이로 중도하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선다 안 나선다 하며 질질 끌다 <나는 이미 강을 건넜고, 돌아갈 다리를 불태웠다!>며 제법 호기를 부리기에 일단은 한 번 믿어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추잡한 이 나라 정치현실에 한 모금 청량제 역할을 하고, 불행한 이 나라 정치 메카니즘에 다소나마 숨통을 틔워주길 기대하며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나 <혹시나> 했던 그 바람이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안>은 정당정치니 후보자 검증이니 단일화 협상이니 하는 구차한 절차나 과정은 전혀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 거 없이 곧장 대통령 자리로 직행하기를 바랐던 너무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무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지지율이 여의치 않으면서 빌보드 차트 3위로 떨어지자 결국 단일화 협상에 불려나갔고, 기대했던 TV 토론에서도 생각만큼의 후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자 몹시 의기소침해진 듯 합니다. 개인적인 정치적 소신과 소양, 조직력, 협상력 등에서 다 한계를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완주하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중도하차 할 바엔, 또 <문>과의 단일화 수작에 기대려 했을 바엔 처음부터 아예 나서지 말았어야 옳았습니다. 적어도 국민들이 그에게 기대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후보등록을 불과 이틀 앞두고 무슨 애들 장난치듯 전격사퇴를 선언한 <안>의 작태는 그동안 국민들을 제 멋대로 가지고 논 거나 다름없는 죄악입니다. 먹이를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송사리 떼라면 몰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어급>이라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안>이 정말 이렇게까지 나약하고 뒷심이 없는 빈 깡통일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안>의 그간의 행보도 순수 자신의 의지였다기보다는 등 떠밀려 온 게 사실입니다. 그 점에서는 <안>도 이 나라 정치 허무주의, 정치 냉소주의, 정치 패배주의의 희생양일지도 모릅니다. 생뚱맞게시리 정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컴퓨터 백신 전문가를 굳이 정치판에 밀어 넣고 여기까지 그를 강제해 온 사람들이 누굽니까? 주위의 바람잡이들이고, 무책임한 언론이고, 한 몫 챙기려는 철새들이고, 신선한 이미지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젊은 세대 아니었습니까? <안>은 주변의 그런 분위기 때문에 자기가 꽤나 대단한 줄 착각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저울질을 하다 대선판에 뛰어든 사람인데, 결국 <안>의 해프닝은 이번에도 정치는 더러운 것이고 따라서 무관심과 냉소주의만이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의 가장 건강한 덕성이라는 역설만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을 뿐입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돼 버린 그의 지지자들만 안쓰럽습니다.
그래도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한 번 베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