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1525",
  "title": "20090311w: 히브리서 강해 27(히 11:32-40)",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09-03-12T12:14:35",
    "original_updated_at": "2009-03-12T16:01:40",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div><!-- paragraph:p000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div>
<!-- paragraph:p0003 -->
<p>2009년 3월 11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27<br>본문: 히 11:32-40</p>
<!-- paragraph:p0004 -->
<p>[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p>
<!-- paragraph:p0005 -->
<p><br>오늘은 입다입니다. 입다도 삼손처럼 사사입니다. 삼손은 가정적 배경이 좋았습니다만, 제대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최후에 자폭하며 회개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래도 삼손의 이름이 하나님이 택한 종이기에 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합니다. 반면에 입다는 인간적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입다도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입다 이야기는 사사기 11장에 나옵니다.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적자가 아니라 서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적자들에게 쫓겨납니다. 돕 땅에서 은둔생활을 하는데, 잡류들이 그에게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객지생활하면서 상당히 불량스럽게 살았습니다. 입다는 서자로 태어나고 쫓겨나고 객지에서 살았으니 맺힌 한이 컸습니다. 이런 부분이 그의 인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입다는 자신의 결함을 잘 조절하며 극복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자기에게 숨은 자질을 계발해서 결국 이스라엘의 제8대 사사가 됩니다. 그는 사사가 된 후에도 이스라엘의 천적인 암몬을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집요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럼에도 입다는 뼈아픈 실패를 합니다. 우선 서원을 잘못해서 뼈아픈 고통을 겪습니다. 사사기 11장 30-31절입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암몬을 상대로 외교적인 협상을 벌이다가 실패하고, 결국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전쟁터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서원은 잘못된 겁니다. 아마 그때 상황이 절박했기에 반드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는 간절함을 담은 극단의 서원이었으나, 이런 서원은 당시 유행하던 이방인들의 제사풍습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몰렉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을 잘 바쳤습니다. 이런 이방의 풍속이 하나님 신앙에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사람들이 짐승보다 사람을 바치는 게 최고의 제사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레위기 18장 21절을 보면,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몰렉 숭배의 영향을 암암리에 받은 듯합니다. 그래서 이런 서원을 한 겁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신앙하는 방법은 다분히 이교적인 형태를 혼합주의라고 합니다. 요즘도 왕년에 부지런히 절에 다니던 사람은 개종 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꼭 절에 가서 부처님 섬기듯 교회생활을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풍토가 워낙 무속적이어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신앙형태를 보면 다분히 무속적이라고 봅니다. 가톨릭 같은 경우는 유교의 대표적인 문화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제사 문제 때문에 초기 우리나라 가톨릭이 무수한 사람이 순교했습니다. 결국 가톨릭은 유교와 접점을 마련했습니다. 우리의 정서적인 토양인 전통문화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입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일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비성서적입니까? </p>
<!-- paragraph:p0007 -->
<p>서원은 할 수 있으나 신중해야 합니다. 서원을 한 이상은 그 서원에 성실해야 합니다. 서원은 내용도 이행도 중요합니다. 우리도 다급할 때는 서원을 남발합니다. 입다도 얼마나 다급했겠습니까? 나름대로 확실하게 서원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인신제사 서원을 한 겁니다. 서원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서원 이행에서는 부족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일을 잘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서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서원 이행에 충실하라는 요청입니다. 일이 잘 처리된 후에 입 닦으려면 아예 서원하지 말라는 겁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신학교에 가보면 학생들 이름 중에 다니엘, 요한, 모세 이런 이름이 많았습니다. 부모가 서원한 자식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방황을 많이 합니다. 왜냐면 자기 주체적으로 서원해서 신학교에 온 경우가 아니고 부모의 서원으로 온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본인에게는 그런 소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원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그 서원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서원을 안 지켜도 다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본인에게는 그 서원이 상처를 많이 입힙니다. 하나님과 약속했다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앙 양심에 끝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조심해야 합니다. 입다는 민족의 운명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서원을 했는데,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했고, 그 서원을 지키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자기 딸을 죽이는 인륜을 범했습니다. 사사기 11장 34절입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얼마나 기겁을 했겠습니까? 옷을 찢고 탄식했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 그 딸을 서원한대로 번제로 바칩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충동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지키라는 겁니다. 어쨌든 서원은 할 때도 잘해야 하고, 또한 이행도 잘해야 합니다. 입다는 이점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습니다.</p>
<!-- paragraph:p0008 -->
<p>사사기 12장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에브라임 족속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입다는 지금 무남독녀를 번제로 바친 상처가 큰데, 이런 입다에게 찾아와 시비를 거는 겁니다. 싸우러 나갈 때는 입다물고 있다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니 ‘왜 전쟁에 우리를 안 끼워줬느냐’며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심지어 ‘너와 네 집을 불사른다’며 협박합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제일 큰 지파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될 때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할만큼 세가 큽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자기들의 세만 믿고 입다에게 전쟁기피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안 불러줘서 그 전쟁에 못 나갔다는 겁니다. 그때 입다는 에브라임의 위선과 교활함을 당장에 성토합니다. 이어지는 2-3절입니다.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그래서 에브라임과 내전에 들어가는데, 이 전쟁에서 에브라임 족속 절반이 죽습니다. 적도 아닌 동족을 눈 깜짝할 사이에 4만 2천명이나 죽입니다.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겁니다. 이것도 입다의 행적 중 치명적인 과오입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보복할 수 있겠습니까? </p>
<!-- paragraph:p0009 -->
<p>그런데도 하나님이 입다를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히브리서 11장에 오르게 하십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나 사무엘 같은 사람들은 이해되는데, 삼손이나 입다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용서를 받고 위대한 믿음의 선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서원을 지켰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게 비록 무남독녀를 죽이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하나님과의 약속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다는 사실에 후한 점수를 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가 될지라도 서원했다면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비록 실수나 경솔하게 서원한 것일지라도 그 서원에 성실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입다의 행적을 보면 잘한 것은 거의 없고 치명적인 과오밖에는 없는데, 하나님과 약속에 충실했던 게 비록 무남독녀를 살해하며 인륜을 범하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입다도 히브리서 11장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br></p>
<!-- paragraph:p0010 -->
<div> </div>

<div class="archive-resource-links"><a href="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B1zJum5rCfk%24" title="원문 미디어 링크 (이용 상태 미확인)"></a></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