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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w: 히브리서 강해 26 (히 11:32-40)

2009년 3월 4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26
본문: 히 11:32-40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에는 기드온을 생각했고, 오늘은 삼손입니다. 삼손이 어떻게 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까요? 히브리서 11장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정말 우리의 귀감이 될만한 믿음의 사람들만 이름이 오르는데, 삼손이 어떻게 여기에 올랐을까요? 그는 성공한 사람이라기보다 실패한 사람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만, 삼손은 가장 전설적인 존재 중 하나입니다. 삼손보다 더 힘 센 사람은 없었고, 천하무적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생애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사기 13장부터 나옵니다. 그의 이야기는 꽤 깁니다. 13장부터 16장까지 나옵니다. 그의 말년부분을 보겠습니다. 사사기 16장 19절 이하를 보면, 삼손이 블레셋 들릴라의 꾐에 넘어가 자신의 힘의 비밀을 털어놓고 맙니다. 삼손이 들릴라 무릎을 베고 자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머리카락을 자릅니다. 삼손은 보통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잡아 두 눈을 뽑고, 옥중에서 연자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연자맷돌은 짐승이 돌리는 건데,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으로 하여금 돌리게 했습니다. 블레셋의 다곤 신의 축제 때 삼손을 다곤 신전으로 끌어내 희롱합니다. 그 순간에 삼손이 하나님께 최후의 기도를 바치는데, 28절입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최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그를 용납하신 겁니다. 삼손이 그 신전의 기둥을 부러뜨림으로써 거기 모인 군중과 장렬한 최후를 맞습니다. 다시 머리가 자란 것이 아닙니다.

삼손은 어째서 그렇게 자폭하다시피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고 태어난 나실인이었는데 어째서 그토록 참혹한 주인공이 되었습니까? 삼손의 사생활이 문란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나실인, 즉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말로 ‘나지르’였습니다. 나실인에게는 몇 가지 금기가 있었습니다. 절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금욕생활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을 삼가야 합니다. 짐승이나 사람의 사체를 만지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성결한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일찍부터 여자에게 약했습니다. 사사기 14장 1절 이하입니다.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일은 하나님이 엄하게 금하신 일입니다. 더구나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삼손은 막무가내입니다. 하나님도 부모도 아랑곳 않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다. 16장 1절도 보십시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4절도 보십시오.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이처럼 삼손은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가장 자제하고 엄격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할 나실인인데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힘은 누구보다도 강했지만 여자와 유혹 앞에서는 누구보다 약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실패요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능대로 살면 안 됩니다. 자제하고 절제하고 자기 감정을 통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비참하게 실패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삼손은 명색만 나실인이었습니다. 그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지켰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만 지켰지 실제 삶은 엉터리였습니다. 독주를 즐기고, 부모님 말씀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그야말로 무늬만 나실인이었습니다. 껍데기뿐인 신자였습니다. 이미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는 순간부터 파계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지키라고 주신 힘이요 능력인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그 괴력을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인도하는 데 쓰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힘을 과시하고,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고, 남의 물건을 약탈하고, 작은 일에 격분해서 여우 3백 마리를 잡고 꼬리에 불을 달아 다 익은 곡식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내 것인 양 막 사용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가정, 물질, 자녀를 주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는 데 주신 겁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자기 감정대로 처리하면 하나님이 회수하십니다. 주신 달란트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엄청난 복을 얻은 사람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을 때 비참한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무지했습니다. 사사기 16장 20절입니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실패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성령이 떠나면 끝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성령이 떠난 사실 조차도 본인이 모르고 있는 겁니다. 왜냐면 영적 지각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감각을 상실한 사람은 어떤 짓이든 다 합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사라진 겁니다. 말씀의 도전도 받지 못합니다. 영적 감각이 예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감수성이 첨예해야, 위기의식도 갖고 회개도 하고, 소명도 깨닫게 됩니다. 삼손은 영성이 극도로 어두워서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떠난 사실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최후는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삼손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6장 28절에 나오는 것이 삼손의 최초이자 최후의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두 눈이 성할 때는 기도하지 않다가, 두 분이 뽑힌 지금에야 최후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렇다면 삼손이 왜 그동안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자기 힘을 믿은 겁니다. 자기 재주, 능력을 믿은 겁니다. 그런데 지금 힘이 사라지고, 눈이 뽑히고, 결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만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한 겁니다. “주 여호와여” 라고 삼손이 기도합니다. 비로소 자기 존재와 삶의 주인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 기도 때문에 그래도 하나님이 삼손을 불쌍히 여기사 그의 이름을 이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신 겁니다. 이제 정신을 차린 겁니다. 그냥 나를 도와 달라가 아니라, ‘주인이시여 이제 내가 당신의 종 됨을 깨닫습니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삼손의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까운 것은 젊고 건강하고 힘이 충천했을 때 기도하고 나실인처럼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겠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겠습니까? 그러나 눈이 뽑히고 짐승처럼 취급당하고, 그것도 우상의 신전에서 희롱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다음에 주님을 찾습니다. 이게 우리 인생들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받아 주십니다. 이게 택함 받은 사람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온갖 짓을 다하고 돌아다녀도 ‘주님’하고 부르면 용서해 주십니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제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삼손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삼손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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