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 다섯 물고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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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모두가 허기진 배를 움켜 쥔 채 날 저무는 광야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제자들이 급히 예수님께 제안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흩어 농가나 마을로 가서 제각기 떡을 사먹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자들로서는 그게 당연한 생각이었고 다른 방도는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기가 막혀서 제자들이 항변했습니다.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저희더러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을 사다 이 사람들을 먹이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주님과 제자들 간에 너무도 현격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 대목입니다. 제자들은 외부적 상황에만 주목하여 광야와 날 저문 현실 앞에서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은 없다고 본 반면 주님은 너희 내부에서 해법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명하신 겁니다. 이어 주님은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겨우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그것으로 오천 명이상의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하나님의 기적을 위해서는 그게 무엇이든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이나 우리의 능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기적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이백 데나리온이 내 수중에 들어와 보십시오. 그때는 배고픈 오천 명보다는 또 다른 곳에 쓸 궁리부터 먼저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 안에 있는 떡 다섯과 물고기 둘의 현실에서부터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결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설령 이백 데나리온의 부유한 내일이 온다할지라도 그것으로 겨우 다섯 명을 먹이기조차 부족할는지 모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에게 꼭 주시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요? 비록 자신이 볼품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얼마든지 불가능의 현실을 가능의 미래로 바꿀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고, 현재 우리가 가진 것이나 내 모습이 초라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주님이 그 꿈의 실현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이며, 그런 기적의 실마리를 여는 일이야말로 누구도 아닌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몫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우리가 그 역할에 무책임하다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비난할 자격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 오늘 주님의 의중일 터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과 육이 허기진 세상을 향해 <여기는 빈들이고 날이 저물었으니 이제 각자가 알아서 하시오. 우리에게는 이백 데나리온이 없으니 그런 큰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님은 지금 이 땅의 모든 교회들과 우리들을 향해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결단이 미뤄지는 동안 허기진 군상들은 광야를 떠돌며 자꾸만 저무는 날을 슬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