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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9년 2월 18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24<br>본문: 히 11:27-31</p>
<!-- paragraph:p0002 -->
<p>[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 하였도다</p>
<!-- paragraph:p0003 -->
<p><br>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모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27절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는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실제 보이는 존재처럼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대신 지금 눈앞에서 위협하는 세상 왕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와 맞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모세는 얘기했습니다. 어떻게 모세는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마치 눈에 보이듯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합니까? 우리가 정말 바라보고 두려워해야 할 존재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바라보지 않고, 바라보지 않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에 세상 사람들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합니다. 마귀가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절대 그 두려움 앞에서 떨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로 이렇게 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애굽의 바로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했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2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 홍해가 나타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절망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도 모세는 떨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백성들 앞에 나서서 ‘너희는 두려워 떨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이래서 모세입니다. 절대 권력자인 바로 앞에서도 검푸른 홍해 앞에서도 그는 떨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약 모세가 하나님을 안 보고, 눈앞에 펼쳐진 홍해나 뒤쫓는 애굽의 전차 군단을 바라보았다면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었을까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어떤 상황, 위기에서도 현실을 바라보고 떨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이 위협하는 물리력 앞에 투항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했습니다. 홍해가 육지처럼 갈라졌습니다. 그 뒤를 따르던 애굽 군대는 수장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검푸른 홍해처럼 위협해도 모세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현실을 두려워하니까 현실에 자꾸만 매몰됩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바라보며 험한 파도 위를 걸을 때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발밑의 파도를 내려다보는 순간에 물결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모세처럼 주님만 바라봅시다. 모세처럼 주님만 두려워합시다. 궁극적인 두려움의 대상은 주님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윽박질러도 이것은 상대적인 두려움일 뿐입니다. 주님 바라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위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뿐만 아니라 모세는 어린양의 피를 믿었습니다. 29절입니다.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바로 앞에서 모세가 행한 열 번째 재앙은 장자 죽음 재앙입니다. 이때 바로가 항복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에겐 그것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이 피를 본 하나님의 사자는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逾越節)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 중 피를 문지방에 바른다고 하나님의 사자가 넘어간다고? 이건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았다면, 그 집의 장자는 죽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세의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밤새 안절부절 하며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 집의 장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록 안절부절 했지만, 그 집의 장자는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세의 말대로 행하고 단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그 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가 이성적이냐, 이방인이냐 유대인이냐, 악하냐, 착하냐는 필요 없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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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절에 ‘피 뿌림의 예식’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피 흘림’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이 피를 내 집에 가져와 내 집문 인방에 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게 ‘피 뿌림’입니다. 그래야 효험이 있습니다. 그래야 죽음의 사자가 내 집을 넘어갑니다. 부디 어린양의 보혈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십시오. 모세는 확신했고, 하나님이 주신 그 처방을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만일 애굽 사람 중 어떤 집이 이스라엘 사람의 집처럼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자기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집의 장자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애굽 사람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가 그 집 문에 발려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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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오늘 본문에는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입니다. 이 사람도 참 대단합니다. 원래 라합은 창녀입니다. 기생은 그저 술시중 드는 사람이라면, 라합은 몸을 파는 창녀였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 1장에 나오는데,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두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 뛰어 들었습니다. 라합은 황급히 그들을 다락방에 숨겨주고, 뒤이어 군사들이 닥쳤습니다. 라합은 기민한 기지로 군사들을 따돌리고 두 정탐꾼을 보호해주고, 곧바로 협상에 들어갑니다. 당신들이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 나와 내 부모, 형제, 친지들을 살려달라는 겁니다.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두 정탐꾼은 라합의 주문대로 맹세합니다. 여호수아 2장 18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p>
<!-- paragraph:p0008 -->
<p>여리고는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성입니다. 라합은 이미 거기서 나그네들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를 건너오며 행한 일을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언젠가는 여리고에 그들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합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도 너희에게 주실 줄 내가 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 가족을 구해줍니다. </p>
<!-- paragraph:p0009 -->
<p>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 가운데 라합의 남편은 없습니다. 당연히 창녀였으니 남편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라합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살몬은 라합을 통해 보아스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살몬은 라합이 숨겨주었던 두 정탐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용모가 왕자처럼 준수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라합은 믿음으로 두 정탐꾼을 숨겨준 덕분에 그 정탐꾼 중 한 명과 결혼하여 이후에 다윗의 조모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위대한 구원사의 반열에 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리고 성벽에 살던 한 이방인 창녀가 이스라엘 정탐꾼 살몬을 만나 그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위대하고 영예로운 여인이 됩니다. 이방인에다가 창녀였는데, 오직 믿음 하나로 자신과 부모형제와 친족 모두를 구원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여리고의 창녀 라합의 이야기가 여러분이 믿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계기를 갖게 하기를 기원합니다.<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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