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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21118n 감사의 모범(요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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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21118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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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요 6:9-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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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감사의 모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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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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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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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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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설교의 주제는 주님이 보이신 감사의 모범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영원한 롤모델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감사의 모범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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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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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은 늘 감사하셨는데,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조건반사적입니다. 감사할 근거, 사정, 형편이 주어져야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감사는 전천후입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신 분입니다. 최악의 여건과 조건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귀감이 되기에 족한 분이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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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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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본문은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인데, 장정만 계수해서 5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며 아이들까지 합치면 1만 명이 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며칠 동안 주님 말씀 듣다보니 허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보냈다가는 가다가 쓰러질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 수중에는 달랑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입니다. 어린 소년의 한 끼 식사입니다. 이 상황에서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한심해서 한숨이라도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이 배고파 늘어진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달랑 오병이어를 손에 쥐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축사가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새번역을 보면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이 상황은 감사보다는 한숨이 터져 나와야 하는데 주님은 감사하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불평, 불만,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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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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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 결과 전무후무한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여러분의 처지나 환경이 볼품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평하거나 한숨 쉬지 마십시오. 오히려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십시오. 진심으로 오병이어를 하나님께 감사하시면 그 초라한 한 끼분 도시락을 통해 주님은 놀라운 기적을 드러내십니다. 배고파 늘어진 5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12바구니나 남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거기서도 감사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사에 아름다운 메아리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게 이름하여 기적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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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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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뿐만 아니라 주님은 생명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유명한 기적이 나옵니다. 죽었던 나사로의 소생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1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무덤에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도 일단 감사부터 하십니다. 안 살아나오면 어떡하려고 말입니까? 주님은 항상 이렇게 선수 치십니다. 아직 살아나온 것도 아닌데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선제적으로 기도하십니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이 가장 약하십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액션을 취하신 것도 아닌데 믿음으로 먼저 감사부터 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 앞에서 하나님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은 꼼짝 못하십니다. 이어지는 42절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리고 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에 나사로가 베를 동인채 나온 겁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생명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내 생명 연장하시고, 올해도 내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이것도 원초적인 감사의 조건입니다.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에 대한 감사가 소홀하고 약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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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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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어제 국민일보에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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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나는 아버지께로부터 폐결핵을 유산으로 받아 젊은 날 7년 동안 투병을 했다. 중년에 재발하여 1년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56세 되는 해 말기암 진단을 받고 위 절반, 췌장 3분의 1, 십이지장 전부를 적출하고 임파선은 덮은 채 12년을 생존하고 있다. 그동안 수술, 항암·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4번의 폐렴, 셀 수 없는 패혈증과 만성적 영양실조로 15㎏이나 빠졌다. 골다공증과 알 수 없는 혈관 혈루로 인해 한 달 동안 수혈 받으며 생존을 위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영과 육이 분리된 어떤 상황에서 5일간 장기가 썩는 알 수 없는 위기도 겪었다. 대상포진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만성적 세균간염에 노출됐다. 지금 나는 하루 5번 식사를 나눠 하고, 매일 두 시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 유지가 힘들다. 이 몸으로 부양할 가족은 12명이요, 섬겨야 할 우리 교회가 있고 봉사기관이 11곳이나 있다. 나에겐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정말 내가 살아있음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 깨달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 수백억 부도로 절망하는 성도에게 “나와 처지를 바꿔서 고난당해 보겠소? 건강은 기적이오. 건강하면 더 큰 물질 경영을 할 수 있소”라고 했더니 그분은 건강 주신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곧 기적이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고 가져가신 분이 하나님이면 다시 주실 분도, 지켜주실 분도 하나님이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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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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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는 하나님께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 건강하게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십시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우리는 여기서 건강하게 삽니다. 이런 우리 생명의 연장이 영생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삽니다. 왜냐면 영생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가사의한 은혜와 복에 대해 깊이 감사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보람을 느끼시며 우리 생명을 돌보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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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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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은 당신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7절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주님의 성찬예식 대목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고 하며 포도주를 나눠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나의 살이다 라고 하시며 떡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눠 주시기 전에 감사하신 것입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감사의 조건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 같으면 피해의식이 하늘을 찌를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나, 내 희생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을 위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말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가능한 일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희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감사하고 그렇게 행하십시오. 그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가락으로 산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우리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며 기꺼이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이런 희생적인 사랑을 우리 삶으로 구현할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충만케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사랑과 감사로 넘치기를 빕니다.</p>
<!-- paragraph:p0023 -->
<p class="p1"><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br></p>
<!-- paragraph:p0025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utpYM_V5raU"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