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1m: 바보들의 행진(수 6:1-9)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9년 2월 1일 주일낮예배
본문: 수 6:1-9
제목: 바보들의 행진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행진하더라
오늘은 주보 칼럼에 제가 영화 얘기를 썼습니다만, 설교도 영화 얘기로 시작합니다. ‘바보들의 행진’ 영화 기억하십니까? 70년대 중반에 나온 영화입니다. 하길종 감독이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청춘영화입니다. 당시는 유신시대였습니다. 그 암울한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절망감, 패배주의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수작입니다. 거기에 영자와 병태가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에는 병태가 머리를 깎고 입영열차를 타고 떠나는데, 영자가 뛰어가서 키스를 합니다. 저는 이 장면만 기억납니다. 주제가는 고래사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보들의 행진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에 무기를 들거나 이렇다 할 작전이 있거나, 정예군이 앞장섰던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인데 이런 사람들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겠다고 날마다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리고 성의 파수꾼들이 얼마나 배꼽을 잡았겠습니까? 애굽을 떠난지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 땅에 첫발을 내딛었는데, 거기에는 또 다른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옹성 여리고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맨손으로 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그 성채를 함락시킵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천연 요새인 여리고가 그들 앞에서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도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장애가 출현했습니다. 그 옛날 여리고 성에 비견되는 큰 위기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도 저 견고한 요새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넘어가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어떻게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습니까? 우선 말씀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게 당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일러주신 여리고 정복의 비결이었습니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첨단 무기도 아니고, 절묘한 작전도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라는 것이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겁니다. 너무도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빈손으로 하루 한 바퀴씩 성 주위를 돌라고 하십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가 막혔을 겁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터무니없는 하나님의 지시를 묵살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지시하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그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모두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누구도 그 바보들의 행진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겠다고 무기 하나 없이 날마다 성 주위를 돌았는데, 결국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자 철옹성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내 앞에 서 있는 태산 같은 성채를 무너뜨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결국 순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종을 잘 못합니다. 그러면서 늘 하는 소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 하루도 못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고집대로 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삶이 따로 놉니다. 우리는 미각과 후각보다 청각에 뛰어나야 합니다.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다 들어야 합니다. 눈은 작고 귀는 커야 합니다. 알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여리고가 정복이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왜 이레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을까요? 7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순종의 정도는 완전한 순종입니다. 일곱째 날 다섯 바퀴만 돌았다면 여리고가 무너졌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순종 정도를 끝까지 지켜보신 겁니다. 누구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정도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레째까지 순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지막 날 일곱 바퀴까지 도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끝까지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 터무니없는 말씀에 순종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고, 거기에 순종하자 여리고가 무너진 겁니다. 올해는 작심하시고 순종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앞에 놓인 저 여리고를 과거 이스라엘처럼 정복하십시다. 거기에 승리의 깃발을 꽂읍시다. 그러려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 바퀴까지 다 돌아야 합니다.
다음은 언약궤를 앞세웠습니다. 당시 그들의 대오를 보면, 일곱 제사장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섰고, 그다음에 언약궤를, 그 뒤에 백성들이 따라갔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도 제일 먼저 법궤가 강물에 들어섰습니다. 백성들은 법궤 뒤에 따라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추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치고 자기가 앞서려고 합니다. 광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불기둥 구름기둥이 앞장서고 그 뒤를 백성들이 따라갔습니다. 불기둥이 움직이면 비록 밤이어도 백성들은 일어나서 따랐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앞장 서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항상 하나님이 앞장서신 겁니다. 언약궤를 앞세우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뒤를 좇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추월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인본주의도 아닙니다.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소위 모노 야웨이즘(Mono-Yawhism)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배제하고 소외시킵니까? 우리는 하나님 상관없이 살려고 합니다. 언약궤를 제치고 자꾸만 자기가 앞서려고 합니다. 소나 나귀나 말은 주인을 앞서지만, 우리는 양입니다. 양은 목자 뒤를 따라야 합니다. 양은 가장 방향감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목자가 앞장서서 가야 양이 뒤를 따라올 수 있습니다. 소띠 해라고 해서 우리가 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목자 되신 주님의 뒤를 따라야만 하는 양입니다. 이스라엘도 여리고 성을 돌 때 그랬습니다. 이제 임금이 나가신다는 의미로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나팔을 불고, 그다음에 언약궤가 나갔습니다. 그 뒤를 백성들이 뒤따른 겁니다. 이 대오를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올해는 꼭 주님을 앞에 모시고 주님의 뒤를 따라갑시다. 주님과 상관없이 내 소신대로 살지 맙시다. 주님을 추월하지 맙시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주님이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가이드이십니다.
마지막으로 함성을 질렀습니다. 5절입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 보십시다. 6장 20-21절입니다.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마지막 일곱째 날 성을 일곱 바퀴를 돌자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백성들이 그 한순간에 믿음의 기를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때로는 필요에 의해 신앙의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합심기도가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 개인의 힘을 하나로 모으면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 되어 함성을 지를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절박했겠습니까?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자 온 백성이 하나가 되어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 함성소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흔든 겁니다. 합심기도는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마치 여리고 앞에서 백성들이 함성을 지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의 전체 제적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하나 되어 함성을 지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 앞에 있는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을 한 지점으로 집중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기 하나 손에 쥔 게 없는 이스라엘이 난적 여리고를 허물고 가나안 정복의 탄탄한 베이스 캠프를 마련한 겁니다. 올해 우리도 믿음을 집중하십시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낙오하지 마십시다. 따로 놀기에는 우리 앞에 버티고 선 성채가 너무도 위협적입니다. 믿음의 기를 집중하십시다. 그래서 개인적이고, 가정적이고, 교회적이고, 국가적인 모든 장애와 태산을 반드시 무너뜨리고, 또 허물고, 정복하는 큰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