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동행

소띠 해 정월 초하룻날 소이야기인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모처럼 참 따뜻한 영화, 흠씬 울었지만 불이 켜진 뒤에도 결코 쑥스럽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기역자로 꼬부라진 팔순 노부부와 평생을 그들과 같이 살아 온 꺼칠하고 윤기 없는 노쇠한 소, 그 늙고 외로운 존재들이 관객들의 깊은 죄책감과 향수를 자극하며 70여분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이 다큐영화를 만든 이충렬 감독이라는 사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이란 긴 시간을 팔순의 부부와 늙은 소 한 마리를 지켜보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끝까지 말 한 마디가 없습니다. 일체 나레이션을 생략한 채 오직 새소리, 풀벌레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로만 전편을 채우며 이따금씩 절제된 음악만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더구나 최노인이 사는 마을이 봉화라니 내 고향녘 아니던가! 어쨌든 통속적인 멜로 드라마도 아니고 구구절절이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도 아닌데, 다만 팔순 노부부가 소 한 마리에 의지해 논밭을 일구며 사는 일상일 뿐인데 이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30년 지기 최노인과 소의 동행을 전혀 과정 없이 아무런 분칠 없이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은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통 소의 수명은 15년 정도라고 하는데 최노인의 소는 무려 마흔 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노쇠한 소지만 최노인에게는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노인은 귀가 어두우면서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소의 워낭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듣습니다. 또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러 날마다 산을 오릅니다. 혹 소에게 해가 될까 논에도 절대 약을 치지 않습니다. 소 역시 늙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기만 하면 태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 서로의 인연이 끝나감을 예감한 노인과 소의 슬픈 눈빛과 힘겨워하며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던 소의 뒷모습이 영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제 주인에게 헌신하다 말없이 세상을 떠난 소의 일생, 이제 소는 갔지만 소가 남기고 간 그 <워낭소리>는 여전히 최노인의 귓가를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소들은 늘 그렇게 자신의 전부를 주고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런 영화에 감동받고 이렇듯 가슴 찡해하는 걸 보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가 봅니다. 모쪼록 <워낭소리>가 소띠 해를 막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