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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1월 25일 주일낮예배<br>본문: 막 4:35-41<br>제목: 잠잠하라, 고요하라!</p>
<!-- paragraph:p0002 -->
<p>[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p>
<!-- paragraph:p0003 -->
<p><br>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으면 삶에 풍랑이 없다고 합니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살아도 생활에 파도가 있고, 오히려 더 많습니다. 왜냐면 전에는 내가 세상과 한통속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내가 예수님께 속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과 적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할퀴고, 시비를 걸고, 툭하면 평지풍파를 일으켜 나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실제 예수 믿기 전보다 믿은 후에 고난은 훨씬 더 많이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경험적으로 그렇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은 후에 주님이 주시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더 성숙케 하려는 주님의 배려이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세상도 나를 적대해서 괴롭힙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으면 현실적으로 고난이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p>
<!-- paragraph:p0004 -->
<p>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함께 하는 뱃길임에도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가면 일었던 풍랑도 잦아들어야 하는 게 우리 상식입니다만, 점점 더 풍랑이 험해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험에 듭니다. 주님이 탄 배인데 왜 이렇게 모진 풍랑을 만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좌절을 많이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할 줄 알았는데, 극심한 고난이 닥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래서 상처받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큰 기대를 갖고서 기독교에 입문했는데, 시험에 들어 기독교를 포기하는 사례가 있습니다.</p>
<!-- paragraph:p0005 -->
<p>실제로 갈릴리 호수는 위험하다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워낙 커서 바다라고도 합니다. 그 북쪽으로는 헬몬산이 있습니다. 해발 2800미터가 높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만년설이 있습니다. 그 헬몬산 꼭대기에서 만들어진 찬 바람이 계곡을 타고 갈릴리 바다에 쏟아지면 호수 위에 있던 따뜻한 바람과 부딪쳐서 돌풍이 일어나 갈릴리 바다를 뒤집어 놓습니다. 그래서 언제 풍랑을 만날지 몰라 어부들도 항상 긴장한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 세상살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언제 돌풍을 만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살이를 고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항해해도 세상은 고해입니다. 세상은 갈릴리 바다와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극심한 풍랑을 만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항상 위험천만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비가 우리를 피해서 내리지 않듯이 우리도 비 맞으면서 삽니다. 풍랑이 우리를 피해가지 않습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p>
<!-- paragraph:p0006 -->
<p>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상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모시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난리법석을 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배고물에서 그냥 주무시고 계십니다. 정말 세상모르고 주무시고 계시고, 제자들만 사투를 벌이며 풍랑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역부족을 느끼고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으니 그때 제자들이 주님을 생각합니다. <br>‘이 배에 주님이 계시지.’ 제자들이 주님을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다분히 원망이 서려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 주무시게 생겼습니까? 그제서야 주님이 일어나서 즉각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면서 파도와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장에 파도가 잦아들었습니다. 풍랑을 평정하셨습니다. 진작 주님을 깨웠더라면 그 고생 안 했을텐데 말입니다.</p>
<!-- paragraph:p0007 -->
<p>주님은 이렇게 자연도 요리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이 잠에서 깨어 그 배를 위협하던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의 조건을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평정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하시면 그 어떤 자연도, 조건도, 형편도 즉각적으로 평정됩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파도를 일으키며 주님이 탄 배를 삼키려고 위협하던 풍랑이 주님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해졌습니다. 주님은 어떤 풍랑도 낭패도 수습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풍랑을 만나면 즉각적으로 주님을 깨웁니다. 어떤 이는 자기 힘으로 그 파도와 싸우다가 애쓰다가 마지막에 주님을 깨워 상처뿐인 구원을 얻기도 합니다. 마지막 카드로 주님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작 주님을 깨웠으면 그 고통을 안 겪어도 되었습니다. 까마득히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그런데 주님이 일어나셔서 위협하던 풍랑을 제압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며,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하십니다(40절). 마태복음 8장에도 이 사건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풍랑을 제압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 후에 풍랑을 평정하십니다. 마가복음과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p>
<!-- paragraph:p0009 -->
<p>어쨌든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깨우기 전에는 안 일어나십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깨우지 못할까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제자들은 얼른 주님을 깨웠을 겁니다. 마지막 카드로 나를 깨운 것은 너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님의 책망은 정확한 지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항해하는 데 왜 믿음이 필요합니까? 항해하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이지 왜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까? 여러분, 불안정한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살이는 믿음으로 하는 겁니다. 주님은 다른 것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왜 너희에게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없기에 풍랑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믿음이 있으면 절대 두렵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먼저 깨웠을 겁니다. 사실 주님은 배고물에서 주무신 게 아닙니다.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언제 나를 깨울 것인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안 주무십니다. 반드시 우리가 주님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믿음으로 깨우면 그때 일어나십니다. 파도를 잠재우시고 상황을 평정하십니다. 주님의 책망은 ‘내가 그토록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나를 깨우냐’는 겁니다. 풍랑을 만나면 즉각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게 풍랑을 제압하는데 가장 지혜로운 비결입니다. </p>
<!-- paragraph:p0010 -->
<p>여러분, 지금 우리의 배에도 주님이 타고 계십니다. 깊은 밤 사나운 물결이 나를 위협할 때도 주님은 우리 배에 타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 제자들이 주님을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파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만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에 빠져서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번은 베드로가 풍랑 위를 걸었습니다. 풍랑을 딛고 서 계신 주님을 향해 걸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풍랑을 걸을 때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빠지고 말았습니다. 파도만 바라보면 실패하고 맙니다.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주님처럼 우리도 파도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풍랑을 딛고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파도가 치면 파도를 바라보게 되고, 풍랑이 일면 그 풍랑만 쳐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잃어버립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살인적인 파도가 이니까 그 풍랑만 붙잡고 씨름하다 결국은 주님을 잊어버린 겁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님을 기억해낸 겁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책망하신 겁니다. </p>
<!-- paragraph:p0011 -->
<p>내일이 설이고, 올 한 해 우리의 항해가 고되다는 것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운명의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다. 제자들을 책망하신 주님의 음성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재주나 능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올 한 해 성공적인 항해를 하십시다. 그래서 바다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항해하십시다. <br></p>
<!-- paragraph:p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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