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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8m: 이스라엘과 하마스(롬 9:7-13)

2009년 1월 18일 주일낮예배/여전도회 주일
본문: 롬 9:7-13
제목: 이스라엘과 하마스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이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 얘기가 나오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천 명 넘게 사망했고, 부상자는 사천 명이 넘습니다. 사실 이번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하마스 소탕작전으로 보면 됩니다. 왜냐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물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쏜 것이 이번 전쟁의 빌미가 되었습니다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에게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집트를 통해 무기를 사지 말라는 등의 경고를 했습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남단으로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입니다. 그런데 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안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하마스가 둥지를 틀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 그들은 자살테러가 주무기입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법학자 출신의 야신입니다. 하마스는 최근 이삼 년 사이에 이집트를 통해, 또는 바다로 무기를 많이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를 손봐야 합니다. 그러던 차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를 발사해서 이스라엘이 공격할 빌미를 제공한 겁니다.

잘 아시듯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휴전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세상 끝날까지 갈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이스라엘 대 아랍권의 전쟁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저렇게 저토록 싸웁니까? 이스라엘은 누구며, 팔레스타인은 누굽니까?

이스라엘은 주후 70년 로마에 완전히 패망하고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팔레스틴의 원주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이 팔레스틴 아닙니까? 그런데 로마에게 완전히 망하고 팔레스틴이 텅 비자, 거기에 아랍인들이 들어가 1948년까지 살았습니다. 거의 2000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자기 땅이니까 팔레스틴을 고집하고, 하마스는 지난 2000년간 실질적으로 자기가 살아왔으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팔레스틴의 영유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거기에 승복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무장 투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2000년 전에 자기들이 살던 땅을 이스라엘이 되찾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그들이 실질적으로 2000년간 살아왔던 땅을 지키기 위해 생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서방 세계에 분노하는 것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그간의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반목은 이보다 훨씬 더 뿌리 깊고 오래된 싸움입니다. 지금부터 4000년 전인 아브라함 시대까지 소급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이 나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어떤 아들입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말고 다른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장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삭을 독자로 알고 있고, 하나님도 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창세기 21장 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합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첩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인해 깊이 근심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라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인간적 연민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차없이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원조입니다. 이삭의 아들은 야곱입니다. 야곱의 후손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란 국호는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 고백합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신앙고백을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고백합니다. 쫓겨난 이스마엘이 아직까지 사막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 일부가 바로 하마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어째서 이삭만 아들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이어서이고, 이삭은 정실의 아들이라서 그렇습니까? 이스마엘은 사라의 아들이 아니어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야곱만 택하고 에서는 버렸다고 하십니다. 둘 다 리브가가 낳은 이삭의 아들인데, 어떻게 해서 야곱만 택했습니까? 따라서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이어서 버림 받았고, 이삭은 본처의 아들이라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본문 8절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정실의 자녀냐 아니냐가 아니라, 육신의 자녀냐 하나님의 자녀냐가 중요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자녀입니다. 아버지도 같고, 어머니도 같고, 게다가 쌍둥이인데, 하나님은 야곱만 택한 것은 에서는 늘 미운 짓만 해서가 아닙니다. 11절 이하입니다. “그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미 하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택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이스마엘과 이삭을 가르고, 에서와 야곱을 가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비록 동생이지만 무서운 집념으로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결국 하나님의 기업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이 집요하게 굴어서 선택된 게 아니고, 이미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한 겁니다. 집념이 차남을 장남으로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차남 야곱을 택하셨기에 그 고된 삶을 살며 결국 장자의 자리를 꿰찬 겁니다.

우리는 다 태어난 후에 남보다 좀 더 착하고, 양심적이어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게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주신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키나 인물로 뽑았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잘 나서가 아니고, 회심을 멋지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택하셨기에 회심도 하고, 사도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예레미야 1장 4절 이하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너를 선지자로 세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장자에게 내리는 축복을 훔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어머니 리브가와 완전 공모해서 장자권을 가로채었다고 보십니까? 이삭이 야곱을 낳을 때가 60세 때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삭을 속일 때가 야곱 나이 60세 전후입니다. 이삭 나이 80세 쯤입니다. 이후 이삭은 100년을 더 살아 180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속은 때가 80세입니다. 180세까지 산 이삭이 80세쯤에서 아무리 감각이 무뎌졌다고 한들 야곱의 연극에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곱은 염소를 잡아 그 가죽을 팔과 몸에 감았습니다. 왜냐면 야곱은 털이 적고 에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로 가장한 겁니다. 이삭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몸은 에서구나. 저같이 감각이 무딘 사람도 세례를 주면 가발인지 자기 머리털인지 감이 오는데, 염소털과 사람털을 구분못하겠습니까? 염소 고기와 사냥한 고기는 다르지 않습니까? 돼지와 멧돼지 고기는 다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 준 겁니다. 지금도 야곱은 자기가 아버지를 완벽히 속였다고 생각하지만,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 준 겁니다. 그는 이미 야곱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에 이삭이 승복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야곱 못지않게 교활합니다. 염소털로 가장하고 들어가 자기가 에서라고 우깁니다. 염소 고기를 사냥한 고기라고 우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무조건 속아주십니다. 왜냐면 차남인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야곱입니다. 입만 벌리면 다 거짓말인데도 하나님이 다 속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삭도 야곱에게 그렇게 속아 준 겁니다. 이후에 있었던 얍복 나루터의 씨름도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준 겁니다. 하나님을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져주셨기에 이긴 겁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져주시고 속아주십니다. 속아주시고 져주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희망을 주시고 새출발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잘나서 택한 게 아니라면, 왜 굳이 이스마엘이 아니고 이삭이며, 에서가 아니고 야곱입니까? 사실 에서보다 야곱이 잘난 게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에서가 훨씬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습니까? 이건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일본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고 온갖 우상을 섬기며 살까?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더 정직하고 더 교양있는가? 왜 하나님은 그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실까? 정말 하나님은 일본을 버리신 걸까?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4절을 보면 바로 이런 문제가 제기됩니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하나님 마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주권행위라는 겁니다. 20-21절입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엿장수가 1분에 가위를 몇 번 친들 그것은 오직 엿장수 마음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무슨 그릇을 만들든 그건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토기는 반문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권한입니다. 야곱을 택하고, 이삭을 택하고, 못난 우리나라를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오직 감사할 것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잘난 사람들 제쳐 두고 못난 나를 택한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자유요 주권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이 절대 주권과 선택의 권한을 제대로 또 깊이 이해하는 성도들 되셔서, 역사와 현실의 여러 사건과 수수께끼들을 신앙과 성서적으로 풀고 해답을 얻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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