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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1월 14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9<br>본문: 히 11:7</p>
<!-- paragraph:p0002 -->
<p>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p>
<!-- paragraph:p0003 -->
<p><br>히브리서 11장은 명예의 전당입니다. 기라성 같은 선진들이 다 나옵니다. 맨 처음에는 아벨을, 지난주에는 에녹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노아입니다. 노아라고 하면 창세기 6-9장까지를 장식하는 대단히 위대한 인물입니다. 심판의 홍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 한 절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 한 절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노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p>
<!-- paragraph:p0005 -->
<p>우선 믿음과 말씀의 관계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의 경고하심을 받아” 라고 합니다. 노아의 믿음의 근거를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믿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의 경고하심을 믿었기에, 그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아직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런데 노아는 믿기는 하되, 경외함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경외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진지하게 들은 정도가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으로 듣고 믿었습니다. 이게 바로 노아의 믿음입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를 보면,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13절입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바로 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믿었다는 겁니다. 미국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라는 학자는 현대인이 심각한 부도덕에 빠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노아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두렵고 떨림으로 믿는다면 아마 이 세상이 지금보다 많이 다를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현대인은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후의 심판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 경고 자체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써 부인하고 부정하는 겁니다. 그저 심판의 경고는 신화적인 얘기로 치부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없이 심판은 있습니다. 노아의 때도 그랬습니다. 겨우 노아의 가족만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믿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소개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도 롯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롯의 사위들조차도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어느 시대 때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심판을 경고해도 사악한 인간들은 믿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심판을 부정한다 해도 인간들은 날마다 심판 속에서 삽니다. 양심의 심판, 법의 심판, 역사의 심판, 국민의 심판 속에 삽니다. 이런 심판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의 예고요 경고입니다. 심판이 없다고 부인해도 우리는 여전히 심판 속에 살며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삽니다. 인간사의 심판은 재주부리면 빠져 나갈 수 있겠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은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렵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최후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다 신화적인 진술이라 치부해도, 반드시 엄정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접수해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7 -->
<p>다음은 노아의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받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마음으로만 믿은 게 아니라, 그 경고를 확신하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 7장 5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세상 사람들이 다 조롱하는데도 1-2년도 아니고 120년 동안이나 실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방주의 설계를 보면 대단합니다. 길이가 300규빗 150미터입니다. 너비가 20규빗 10미터, 높이가 30규빗 15미터입니다. 내부 구조는 3층으로 되어서 1-2층은 각종 동물이, 3층에는 노아의 식구와 양식을 저장했습니다. 120년 뒤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해서 이렇게 거대한 방주를 잣나무로 만들어 안팎으로 역청을 칠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가슴이나 말로 믿은 사람이 아니라 실천으로 믿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나, 믿음은 행함을 낳습니다. 행함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참 거짓 구분은 행함으로 가능합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는 요란한 믿음은 있는데 행함은 없습니다. 아멘 아멘은 있는데, 실제 노아처럼 방주를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는 겁니다. 심판이 있음을 믿으나 실천적으로 심판에 대한 대비가 없다는 겁니다. 노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려 120년간이나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믿음은 공허한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검증이 된 산 믿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맑은 하늘 아래에서 그것도 바닷가가 아닌 산에서 배를 만들었고 그것도 120년간이나 그랬으니 사람들의 조소와 질시가 어땠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러니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하지 않습니까? </p>
<!-- paragraph:p0008 -->
<p>이런 노아의 행함의 믿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7절 하반절을 보면 “그 집을 구원했다”라고 합니다. 노아의 믿음으로 그와 온 가족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복된 결과입니까? 신약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결과와 같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 오늘 우리도 같습니다. 내가 예수를 열심히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섬긴 결과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내 주위의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면 그 이상의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내 믿음 때문에 내 자식이나 가족이 구원을 얻을 수는 없지만, 내 믿음이 도전을 주고 아름다운 영향을 미쳐서 결과적으로는 온 가족과 내 이웃이 구원에 이르는 복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노아에게 최후통첩을 하십니다. 노아가 삶으로 믿음의 본을 보였기에 그 가족이 그를 신뢰하면서 함께 구원이 방주를 들어간 것입니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의 경우와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태복음 24장 37절 이하를 보면,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지막 때도 사람들은 일상에 매몰되어 살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당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인 줄도 모르고 다 당한다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을 보면,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한편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의를 증거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가 기회 닿는대로 전도하듯이 당시 노아도 그랬다는 겁니다. 오로지 노아 가족들만 믿었습니다. 그 경고한 진노의 홍수가 시작되었음에도 사람들은 꿈에도 하나님의 심판인 줄도 모르고 다 수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마지막 날도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막상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도 그게 하나님의 심판인줄 깨닫지 못하며 죽어간다는 겁니다. 노아의 믿음이 우리에게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기사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한 번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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