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111m: 강령(엡 5:18) 제직헌신예배

2009년 1월 11일 주일낮예배/제직헌신예배
본문: 엡 5:18
제목: 강령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늘은 제직주일입니다. 올해 주소록 제4면에 나와있는 우리 교회의 10대 강령을 펼쳐 보십시오. 적어도 우리는 이 지침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예전 학교에서 가르쳤기에 점수를 많이 매겨 보았습니다. 10대 강령을 우선 제게 적용하면 몇 점이나 나올까요? 90점을 말씀하시는데, 양심적으로 평점을 내 본 결과 70점이었습니다. 직업적 목회자치고는 점수가 저조합니다. 최소한 80점 이상은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 제직들은 몇 점일까요? 이망래 권사님은 50점 나왔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제직들의 점수를 50점으로 매겼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푸른교회 제직들의 신앙점수는 50점입니다. 너무 점수에 인색했습니까? 그러면 일반 성도들은 몇 점일까요? 제직들보다 좀 못합니다. 50점 이하입니다. 심하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제가 발표한 점수를 참고하셔서 새해에는 분발하십시다. 저도 열심히 더 해서 80-90점대로 올리겠습니다. 제직들도 70점대로 끌어올려야겠습니다. 일반 성도들도 50점 이상은 되셔야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너무 약합니다. 점수를 좀 더 올립시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본이 되는 지침을 짚어 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충만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말씀드리며 강조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자기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고, 성령께서 도우시고 강제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새삼 깨닫는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이 끊임없이 내게 역사하십니다. 좀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의욕, 말씀을 가까이하고 싶은 생각을 주시고, 인간적 고집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다만 내가 영적으로 너무 둔감하기에, 성령이 아무리 역사를 하고 자극을 주어도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영성이 투명해야 합니다. 영적 감각이 예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과 교감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내가 명실상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의지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 영성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영성을 보다 투명하게 하셔서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올해는 개인적으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론적으로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고백하지만, 체험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성령을 훼방하며 삽니다. 이러다 결국 성령을 소멸하는 지름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성령이 극도로 회의에 빠지면 성령이 떠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끝장납니다. 성령충만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양적으로 더 받는 게 아니고, 이미 내 안에 계신 성령을 깨닫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겁니다.

둘째,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우리 교단의 최고 원로가 방지일 목사님(영등포 교회 원로목사)이신데, 올해 99세이십니다. 지난 주 국민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나왔는데, 장수의 비결이 바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겁니다. 그분은 지금도 설교하고 성경공부 인도하고, 전도하고 기도하며 다니십니다. 영등포 교회는 원로 목사가 두 분입니다. 방지일 목사님 밑에 70이 넘은 원로 목사님이 또 있습니다. 그분이 방지일 목사님을 모시고 국내외로 다니고 있습니다. 방 목사님의 직계 가족이 100명이 넘고, 오늘 증손자가 유아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항상과 감사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하라는데 이게 말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일이 잘못되고 슬픈 일이 발생하고, 실패해도, 시험 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웃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혹독한 시련은 나를 정제하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기에 축복입니다. 지금은 나를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매질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든 기뻐하십시오. 불행이나 슬픔이 아닙니다. 축복이요 기쁨입니다. 우리는 눈앞 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멀리 보시고 내 주위를 다 살피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순간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시야를 넓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도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우연은 없고, 다 필연입니다. 고생도 다 필연입니다. 우리 제직들은 올해 표정이 늘 밝아야 합니다. 그늘이 지면 안 됩니다.

셋째, 날마다 기도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 5장 17절, 베드로전서 4장 7절을 보면 다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하면 영혼의 호흡을 멈추는 것이기에 우리 영혼이 질식합니다. 우리가 잠잘 때도 호흡은 해야 하듯이, 우리 영혼이 살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근신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너의 삶으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는 반드시 교회 나와서 하는 기도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걸어가면서, 잠자려고 누워서, 화장실에 앉아서, 노동을 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기도여야 합니다. 온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겁니다. 오죽하면 기도 쉬는 걸 죄라고 했겠습니까? 기도 쉬는 것은 죄입니다. 다니엘이 백성들 앞에서 그랬지 않습니까?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도에 무책임하고 기본적으로 안일합니다.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또 많은 바램과 소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 때 외부 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넷째, 주일을 성수하는 겁니다. 주일 성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에겐 여러 율법이 있습니다만, 율법 중에서 가장 중추적인 법이 안식일 법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법에 가장 많은 규례와 율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법을 지키기가 제일 어렵고, 이걸 어기면 가장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안식일 법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담보였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이 법에 목을 매었습니다. 주님이 왜 유대인들의 미움을 샀습니까? 주님이 왜 십자가에 달렸습니까? 왜 그들이 악을 쓰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까? 주님이 안식일에 한 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처치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안식일 법을 무섭게 생각하고,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법에 여러 가지 규례를 만들어 놓은 율례가 가장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율법 시대를 살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기본 중 기본이 바로 주일 성수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왜 주일을 못 지킵니까? 많은 분이 시간 핑계를 댑니다만, 이건 거짓말입니다. 이건 주일의 주자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는 사람도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을 바치는, 한 주간의 첫날을 성별하는 게 주일성수의 개념입니다. 그 무엇도 주일 앞에서는 우선순위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한 주간의 첫날이 주일입니다. 일월화수목금토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닙니다. 주일이 첫날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주일을 바쳐야 합니다. 한 주간의 첫날을 바치는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다른 것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한 주간의 첫날을 주님께 떼어 바치는 것이 바로 주일성수입니다. 그 다음에 직장도 나가고, 학교에 가고, 결혼식도 가고, 여행도 가는 겁니다. 한 주간의 첫날은 이유가 없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한 주간 가운데 첫날은 하나님의 날이기에 바쳐야 합니까? 아닙니다. 첫날의 대표성, 상징성 때문입니다. 첫날을 바친다는 것은 그 주간 모든 날을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의 사상이 그렇습니다. 장남을 바쳐야 합니다. 장남만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장남을 바치는 것은 내 자식을 다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소득의 대표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소득을 바침으로써 내 모든 소유를 바치는 겁니다. 첫날을 바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시간은 없어도 주일성수할 시간은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주일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밥 먹고, 친척 결혼식 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 한 주간을 다 바친다는 것은 내 삶을 다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법, 주일성수법이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이유를 대지 마십시오. 무조건 주일성수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얼마나 오묘한 이유가 많은지 모릅니다. 목사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안 통합니다. 잠도 주일 지킨 다음에, 돈 벌이도 주일 지킨 다음에 하십시오. 제직이 주일을 못 지키면 자격 없습니다.

다섯째, 공예배에 성실하자는 겁니다. 공예배는 주일예배, 오후예배, 새벽예배 이런 것들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을 보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모이기를 싫어해서 모이던 모임도 폐지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지 않으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오전에 모이고 저녁 7시에 모이다가 오후로 갔습니다. 이제 몇 년 안 가서 오후예배가 없어질 겁니다. 예배를 안 드리기 위한 우링의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도 안 모입니다. 이건 갈수록 그렇게 될 겁니다. 이건 아주 극명한 말세지말의 현상입니다. 모여야 뜨거워집니다. 모여야 무언가 힘을 하나로 만들어서 뭔가를 이룰 것 아니겠습니까? 잘 타던 불도 흩어 놓으면 당장 꺼집니다. 올해 제직들은 열심히 모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하면 아주 기본적인 모임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도통 안 모입니다. 이건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여섯째, 매일 말씀을 봐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이고, 말씀은 우리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더 많이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올해는 개역개정판 원년이라고 생각하시고, 올해 꼭 1독씩 하십시오. 며칠 전 어느 모임에 갔는데, 어느 40대 목사님이 성경을 340독 했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개역개정판 성경 1독씩 하십시다. 재밌는 설교를 듣고 웃기는 예화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 마시고, 직접 성경을 보십시오. 우리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살 수 있지 않고, 맛 없지만 밥을 먹어야 살 듯이 성경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쌀도 현미가 건강식이듯, 재미없고 맛없더라도 현미밥 먹는다 생각하시고 성경을 직접 읽으십시오. 이게 가장 웰빙식입니다. 꼭 올해 제직들은 일독씩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일곱째,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없지만, 돈 없어서 십일조 못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십일조는 내 수입을 우선적으로 성별하는 겁니다. 월세를 내기에 앞서서, 아이들 학원비 주기에 앞서서, 외식비를 떼기에 앞서서 제일 먼저 1/10을 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내 소득의 정확한 1/10도 뜻하지만, 초 태생을 바치는 겁니다. 첫 소득, 첫 수익, 장남을 바치는 겁니다. 한 주간 가운데서 어느 날이 아니라 첫날을 바치는 겁니다. 내 소출의 첫 소출을 바치는 겁니다. 초실을 바치는 게 십일조입니다. 첫 새끼를 바치는 겁니다. 이 부분을 허술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첫 번째 것이 갖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첫 번째를 바친다는 것은 그 다음의 것을 다 바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제직들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말라기서 3장 10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올해 한 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신 온전한 십일조를 하십시오. 이런 사람에 한해서만 하나님을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 올해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나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니, 약속하신대로 내 창고가 넘치도록 부어달라고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덟째,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재작년 2007년에 119 전도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씩 구원하자고 했는데, 올해는 제직들이 의무감을 가지고 해보겠습니다. 지난 번 정책 제직회를 할 때 문화전도부가 올해 목표를 제시했는데, 거기에 기도하자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전도부가 주관하셔서 올해는 제직들이 119 전도 캠페인을 벌이십시다. 기도하고 실천적으로 전도하십시다. 지금 우리 주변에 불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몫이 아니고, 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누어서 감당해야 할 선교의 몫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훗날 하나님이 동시대를 살다가 예수 안 믿고 죽은 이들의 핏값을 우리 손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불신자들을 누가 전도하겠습니까? 그들과 더불어 사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핑계대는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라는 겁니다.

아홉째, 이웃 사랑을 실천하십시다. 요즘 우리 개신교의 이미지가 사정없이 곤두박질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가톨릭은 신뢰도가 높은데, 그 이유로 가톨릭은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우리 개신교는 자기들만 위하고 사회를 돌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초기 우리 개신교는 사회사업을 많이 했습니다만, 그건 옛말이 되었고, 이제 자기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는 겁니다. 이게 왜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겁니다. 좀 더 우리도 자선하고 기부해야겠습니다. 좀 더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이웃들에게 애정을 가져야겠습니다.

열 번째, 맡은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을 보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제직들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직분이 본업입니다. 제직들은 가정이나 사회 중심이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하는 일은 부업입니다. 본업은 제직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게 옳습니다. 남는 시간에 교회에 충성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면 먹고 마시는 것을 해결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믿을 믿음이 없는 겁니다. 얼마나 딱하면 주님이 날아가는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고 주님의 분부를 받들며 제직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면, 그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이 보장해 주십니다. 들의 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입히고 먹이시는데, 우리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다만 이 말씀에 우리가 진지하지 못하기에 의식주에 노심초사하며 주님의 일을 방치하고 맙니다. 올해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종이 될지언정,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10대 강령을 숙지하시고, 지니고 다니시면서 수시로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