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104n: 소망과 긍휼(애 3:32-41)

2009년 1월 4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애 3:32-41
제목: 소망과 긍휼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본문 32절 하반절입니다.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고 합니다. 29절 하반절에는 “소망이 있을 지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새해에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하나님의 소망과 긍휼인데, 대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베푸십니까?

첫째, 고생과 근심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입니다(33절).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근심하고 고뇌하는 게 절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우리 인생 가운데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에게 소망을 주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근심 없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고, 고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고생하고 근심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가 근심 없이 살 수 없을까요? 하나님의 본심이 아닌데 왜 우리가 고생하며 삽니까? 대체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이 본심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병주고 약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라고 우리 삶을 간섭하시는 결과가 근심이요 고생입니다. 사생자이면 하나님이 간섭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매로 다스릴 필요도 없고, 우리로 고뇌하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고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 딸이요 백성이기에 일일이 우리 삶을 간섭하신 결과, 본의 아니게 우리로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매 안 맞고 인간 되겠습니까? 부모의 체벌 없이 바른 사람이 되겠습니까? 매를 들고 살아야 우리 자녀들이 반듯하게 자랍니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지만, 우리가 고아가 아니기에 인간 되라고 때로 매도 드시고, 우리로 고뇌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꿰뚫어 이해하십시오. 여러분의 현실과 고뇌스런 삶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십시오. 그러면 정말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비관에 빠지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대드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화와 복이 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믿고 깨닫는 사람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습니다. 38절입니다.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이사야 45장 7절을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은 빛도, 어두움도, 평안도, 환난도 다 주관하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에게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러분, 화와 복, 빛과 어두움, 삶과 죽음이 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우리가 망하기도 흥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가 애쓰면 보란 듯이 번듯한 일을 이룰 줄 생각합니다. 이런 착각에 빠져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근본적입니다. 아무리 노력해서 쌓아놓으면 무엇합니까? 한 방이면 날아갑니다. 오늘 밤에 내가 너의 생명을 회수하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손에 달렸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는 자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말로는 다 알고 있으나, 실제 삶으로는 모르고 살아갑니다. 모든 게 자기 노력에 달렸다고만 생각합니다. 애쓴 만큼 뭔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 행위를 부단히 조사하는 자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습니다. 40절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조사한다는 말은 취조, 심문, 관리, 단속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엄격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비판하고 자기 관리를 통해 무슨 일에서건 여호와께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바울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네가 믿음에 있는가 너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확증하라는 말이 바로 조사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철저히 조사해서 조금이라도 여호와를 떠나거나 여호와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무책임하게 관리합니다. 항상 확인해서 여호와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에 대한 자기 점검이 약합니다. 스스로 자기 행위를 조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호와께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게 잘 안 됩니다. 끝없이 갈 뿐입니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부단히 자기 자신을 조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살펴보고, 멀어져 있으면 하나님께로 자꾸만 당기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습니다. 올 한 해 자기를 잘 관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드는 사람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습니다(41절). 이 말은 항복한다는 말, 투항한다는 말, 자기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손들고 나아간다’고 합니다.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한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드십시오. 어떤 분은 한 손만 듭니다. 전적으로 두 손을 들되, 마음까지도 들어야 합니다. 전폭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하나님께 두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자기 재주로 인생을 살겠다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오기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2009년 새해에는 벽두부터 마음과 두 손을 하나님께 들고 전적으로 항복을 선언하십시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이 전적으로 내 삶에 개입을 하십니다. 오로지 내 삶을 당신의 뜻대로 요리해 주십니다. 그 인생에게 소망과 긍휼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투항하지 마시고, 마음과 두 손을 온전히 여호와 앞에 드시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베푸시는 소망과 긍휼로 복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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