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1228n: 고백(딤전 1:12-15)

2008년 12월 28일 주일오후찬양예배
본문: 딤전 1:12-15
제목: 고백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주후 67년 네로 황제에게 참수를 당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의 말기 작품으로서 순교 직전에 쓴 편지입니다. 바울 자신의 삶을 결단하면서 쓴 인생 고백입니다. 바울이 살아 생전 최후로 남긴 신앙고백입니다. 13절입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자기가 전에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것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신과 무지가 그로 하여금 과거에 그렇게 살게 했다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믿지 않기 때문에, 불신 때문에, 무지 때문에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로 삽니다. 그래서 불신과 무지는 큰 죄입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람도 전에는 불신과 무지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랬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회심을 하고 180도로 사람이 변합니다. 바울이 지금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 가지를 고백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고 포행자였는데, 이제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뵙고 변했다는 건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도 바울과 같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은혜로울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은 우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14절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믿음의 사람으로 지난 반생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믿음으로 올 한 해를 살아왔노라 고백할 수 있어야겠는데, 어떠십니까? 고비고비마다 믿음으로 여기까지 살아오셨습니까? 불신으로 엎어지거나 자빠지지는 않으셨습니까? 바울이 평소에 무엇으로 전도하며 살았을 것 같습니까? 바울은 말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더러 당신은 사도가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탁월한 언사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글로 전도했을까요? 맞습니다. 바울은 탁월한 문필가입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바울의 글을 접하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요즘처럼 인쇄술이 발달해서 여러 사본을 만들 수 있었으면 모르지만, 아무래도 바울의 글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으로 전도를 했겠습니까? 육화된 믿음으로 전도했습니다. 바울은 인격 자체가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걸어가면 그게 곧 전도였고, 누군가와 대화하면 그게 전도였습니다. 14절에서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는 말은 맞습니다. 바울은 그의 걸음걸이, 사역 일체가 믿음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인격으로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온 몸으로 믿음을 발산하며 살았습니다. 그만큼 믿음이 충일했던 사람입니다. 14절 말씀 그대로 넘치도록 믿음이 풍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한 해를 마감하며 믿음으로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울은 반평생을 이렇게 살았다는데, 우리는 한 해도 그렇게 못 살았습니다. 부디 2009년 새해에는 그야말로 한 해 내내 믿음이 넘치는 성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내년 연말에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넘치는 믿음의 풍성함’으로 살았다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바울은 사랑의 사람이 아니라 증오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대단히 호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사람을 선동해서 스데반을 쳐죽이는 전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회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메섹에 숨어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처단하려고 거기로 가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화신인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는 철저히 사랑의 분신이 됩니다. 사랑장이 고린도전서 13장인데, 이것을 바울이 썼습니다. 사랑의 사도가 된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없어도 가짜지만, 사랑이 없어도 가짜입니다.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 믿음과 사랑을 내밀어야 합니다. 주민등록증은 안 됩니다. 그만큼 우리의 정체성, 동일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바로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먼저 믿음을 그다음엔 사랑의 카드를 딱 내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을 믿고, 또한 삶의 독본인 고린도전서 13장을 날마다 읽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랑이 넘치도록 풍성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이 그의 죽음 앞에서 과장된 것이었을까요? 지난 12달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시고, 새해에는 꼭 사랑이 넘치도록 풍성한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불시에 언제든 내보이라 하면 사랑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기가 아니고, 사이비가 아니고, 가짜가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충성된 직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이 전부는 아닙니다. 구원은 기본입니다. 구원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뜻에 충성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예수를 믿으면 직분이 주어집니다. 그 직분에 충성하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 우리 능력에 맞게 주님은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직분을 맡기십니다. 훗날 최후 심판의 결산을 통해 우리에게 영광을 안겨 주시기 위해 반드시 직분을 주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이제 충성된 직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반평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성하고 헌신했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이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목회를 십 여년 하고 있는데, 자기에게 직분을 맡겨줘서 고마워하고 감사하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가끔 보지만, 자기에게 직분을 맡겨 줘서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죄인의 괴수인데 하나님이 직분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합니다. 오늘이 송년주일인데 올해도 내게 맡기신 직분에 충성을 다했노라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감할 수 있으십니까? 새해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성하셔서, 연말에는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는 직분자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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