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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7w: 히브리서 강해 16(히 10:26-39)

2008년 12월 17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6
본문: 히 10:26-39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26절에 나오는 짐짓 죄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이미 지난주에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편에서는 고범 죄 라고도 합니다. 고의로 범한 죄입니다. 알고도 범하는 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을 받고 씻김을 입은 사람도 당연히 주님 오심이 가까울수록 더 열심히 모이고, 서로 돌아보며 격려하고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것이 옳은데, 도리어 갈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것, 서로 돌아보지 않고 각각 제 사는 일에만 연연하는 것, 믿음의 도리를 붙잡기는커녕 잡고 있던 손마저도 놓는 것이 다 짐짓 죄입니다. 왜 이런 짐짓 죄가 무서우냐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26절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왜 짐짓 죄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습니까? 왜 짐짓 죄는 그만큼 치명적입니까? 29절 마지막 대목을 보면, ‘너희는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28-29절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광야에서 율법을 범했다가 죽은 사람들 많습니다. 뱀에 물려 죽은 자들도 있고, 지진에 죽은 자들도 있고, 염병에 죽거나, 하나님의 사자가 쳐서 급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범하고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고의로 부정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자가 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정상이 참작되겠으나 알고도 짓는 죄를 범하고도 너희가 어떻게 용서받기를 바라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짐짓 죄는 본문을 그대로 대입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행위이고, 자기를 깨끗케 한 속죄의 피를 부정하는 것이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따라서 짐짓 죄는 중한 형벌을 면치 못할 죄라는 것이 본문의 논리입니다. 한 마디로 짐짓 죄는 내 죄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한 번 더 죽이는 죄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짐짓 죄를 피하고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담대해야 합니다. 3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10장 1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2절 하반절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 담대함이란 믿음의 강한 의지를 뜻합니다. 우리가 왜 날마다 알고도 죄를 짓습니까? 믿음의 담력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신앙체질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의지가 너무 연약하기에 우리는 작은 것 앞에서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용기로 충만하여, 그것으로 악한 유혹을 극복하면 얼마든지 짐짓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담대하여 믿음의 용기를 가져야 큰 상을 얻습니다. 누구도 악한 유혹과 싸우지 않고 거저 상이 주어지진 않습니다. 32절을 보면 ‘고난의 큰 싸움’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큰 상을 얻으려면 ‘용기’, ‘믿음의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짐짓 죄와 싸워 이기려면 담대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체질이 강해야 합니다.

둘째, 인내가 필요합니다. 갈수록 우리는 참고 견디지를 못합니다. 얼마나 우리의 정서도 믿음도 조급한지 모릅니다. 기도를 하고도 기다리지 못해서 응답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매번 일을 그르칩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짐짓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서 결국 짐짓 죄를 범합니다. 그런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내 조급증이나 내 시간표대로 나를 따라와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채비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응답하시기에 반드시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 예정, 시간표대로 행하십니다. 참지 못하면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시험에서 항상 낙제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발을 구르고 하나님을 윽박질러도 하나님은 당신의 예정을 취소하거나 우리 주문대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방정맞게 군다고 하나님이 우리와 타협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가 오래 참은듯하나 아무리 오래 참았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허락하시고 반응하실 때가 가장 합당한 때입니다. 우리는 인내하지 못해 늘 짐짓 죄를 범합니다. 인내해야 짐짓 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셋째, 뒤로 물러가지 말라고 합니다. 38절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로마서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롬 1:17). 39절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침륜은 깊이 가라앉는다는 뜻입니다.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짐짓 죄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인데, 뒤로 물러나면 짐짓 죄에 빠지게 됩니다. 성장하고 성숙해야 할 사람들이 날마다 뒤로 물러가고 비틀거리다 침륜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짐짓 죄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현실에는 뒷걸음치다가 도태된 사람들 많습니다. 뒷걸음질 치면 짐짓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뒤로 물러가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금기요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다가는 반드시 짐짓 죄라는 침륜에 빠지기 때문에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큰 상을 얻습니다.

올해도 여러분 어떻게 오늘까지 사셨습니까? 짐짓 죄의 유혹을 이기며 담대하셨습니까? 끝까지 참고 견디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비틀거리거나 뒤로 물러서다가 침륜에 빠지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하나님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 연말까지 오셨습니까? 이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며 다시 한 번 주님께 회개의 기도를 바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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