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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8년 12월 7일 주일낮예배<br>본문; 마 25:14-30<br>제목: 무익한 종</p>
<!-- paragraph:p0002 -->
<p>[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p>
<!-- paragraph:p0003 -->
<p><br>유명한 달란트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에도 이 내용과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데, 므나 비유입니다. 그런데 형태만 비슷하고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는 좀 다릅니다. 일단 화폐 단위가 다릅니다. 므나나 달란트는 당시 화폐 단위였습니다. 달란트에는 3명의 종이, 므나 비유에는 10명의 종이 나옵니다. 종들이 받은 단위도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5, 2 1 달란트를 받는데, 므나 비유는 모두 한 므나씩 받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외경에도 나옵니다. 나사렛 복음서에도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만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하는 내용만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땅에 묻어 두었다가 원금만 내놓은 종이 책망을 듣는데, 나사렛 복음에서는 본전마저도 창기와 함께 탕진한 종이 벌을 받습니다. 이 대목만 다르지 나사렛 복음과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는 유사합니다. </p>
<!-- paragraph:p0004 -->
<p>어거스틴은 이 비유를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요, 종들은 믿는 자들이고, 주인이 여행을 떠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고, 종들을 불러 결산한 것은 최후 심판을 말하며,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약속한 잔치는 천국을 뜻하며,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쫓겨난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대개 달란트 비유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런데 이 비유는 유명한 만큼 그동안 제기된 문제와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이 달란트를 차등 지급했습니다. 이것부터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분배 균등의 원칙을 범했다는 겁니다. 기회균등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겁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주인이 각각 종들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는데, 여기에 이미 인간 차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겁니다. 또 결산하면서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돈을 열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준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인 빈익빈 부익부에 해당하는 그릇된 처사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러나 주인이 각기 다르게 달란트를 맡긴 것은 사람 차별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한 겁니다. 이런 엄연한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달란트를 주었다는 이것이야 말로 비합리적이고 역차별입니다. 주인은 사리깊고 분별력 있는 주인입니다. 훗날 주인이 돌아와 결산하는 대목도 보면, 엄연한 남긴 달란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고 칭찬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을 칭찬한 21절과 두 달란트를 더 남긴 종을 칭찬한 23절 말씀이 같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그런데 이 비유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주인이 훗날 여행에서 돌아와 냉혹하게 심판했다는 점에서 그의 말이 맞긴 합니다. 그러나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는 것’은 황당한 말입니다. 주인은 날강도가 아닙니다. 26절 보십시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허탈하고 황당해 하는 주인의 말입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만큼만 찾은 종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남긴 종은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의 것을 허비하지 않았고, 당신은 당신의 것을 되돌려받았으면 된 것 아닙니까? 라고 하며 무엇이 불만이냐고 합니다. 나사렛 복음에 나오는 종처럼 나는 당신의 것을 창녀들과 탕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으로 족한 줄로 여기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최소한 한 달란트 받은 자도 본전을 축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잘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못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p>
<!-- paragraph:p0008 -->
<p>이 종의 잘못은 죄를 저질렀다거나 손해를 끼친 데 있지 않고, 주인이 맡긴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른 종들은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곧장 무언가를 했습니다. 이것은 주인의 부름에, 소명에 충실하게 응답한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것은 본전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장사해서 이익을 남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 멋대로 주인의 뜻을 해석한 종이었습니다. 주인은 비록 본전을 까먹었어도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처음부터 땅에 묻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추상같은 심판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28절). 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것이 바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종의 최후 운명입니다. 쫓겨나서도 거기에서 이를 갈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난장판을 벌인다는 겁니다.</p>
<!-- paragraph:p0009 -->
<p>그러면 왜 이 종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을까요? 그의 대답은 다 변명일 뿐입니다.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받은 달란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받은 달란트를 과소평가한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장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란트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는 없다고 합니다. 자기의 달란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겁니다. 이것이 겸손인 줄 착각하고, 고민도 없이 사는 분들 많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의 전형이었습니다. 자기 주위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닙니다. </p>
<!-- paragraph:p0010 -->
<p>다음으로 희생이나 모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예 시도조차 안 한 겁니다. 어떤 장사, 봉사도 모험 없이, 희생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p>
<!-- paragraph:p0011 -->
<p>마지막으로 불신앙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주인이 돌아와서 반드시 결산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고 확실히 믿지 않았기에 무책임했다는 겁니다. 그가 최후결산을 믿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겁니다. 본문을 보면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주인이 안 돌아오니까 마음이 풀어진 겁니다. 우리도 최후 결산에 대한 불감증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내성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도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p>
<!-- paragraph:p0012 -->
<p>여러분은 어떻게 12월까지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은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건사하시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당당하게 주인과 연말결산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일 년 단위의 연말결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연말결산과 내 인생 최후의 결산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최종 결산은 일년 단위 결산의 연장입니다. 연말결산의 결과가 게으르고 악하고 무익한 종이면, 최후 결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말결산과 최후 결산은 다르지 않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일을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산입니까! 12월은 성탄의 달이면서 결산의 달입니다. 올해도 끝까지 받은 달란트에 충실하셔서 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 될지언정 악하고 무익한 종이 되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기는 불행한 성도가 없기를 기원합니다.<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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