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아, 렘브란트!

예술의 전당의 낙엽들이 누우런 빛을 발산하는 지난 수요일 오후 <서양미술의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가 열리고 있는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잠시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걸어 보았고, 콧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의 향기도 느껴 보았습니다.

요즘의 늦가을 색과 너무도 닮은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 특히 네덜란드의 렘브란트(1606-1669)는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벨기에의 루벤스와 함께 17세기의 최고 화가로 손꼽히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유럽 회화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암스테르담 근교인 레이던에서 예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평범한 방앗간 집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천성적인 화가의 꿈에 사로잡혀 결국은 대학을 중퇴하고 뒤늦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할 즈음 레이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진출한 렘브란트는 아름답고도 부유한 귀족 출신의 여인 사스키아와 결혼하면서부터 신분 상승은 물론 당대 명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부와 명성을 함께 얻습니다.

그러나 1642년 렘브란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지는데 때맞추어 대작 <야경>에 대한 비판과 혹평이 쏟아지면서 하루 아침에 그림 주문이 뚝 끊겨 파산을 맞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걸작들은 암스테르담의 귀족들과 교류하며 보낸 호사스러운 전성기 때보다 오히려 비참하고 고독했던 말년 작품에서 더 많이 나왔습니다.

렘브란트의 일생이 보여주는 이런 영광과 몰락은 그의 표현기법이 주로 빛과 어두움의 대비라는 점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특히 이번에는 그의 매혹적인 에칭이 26점이나 특별 전시되고 있어서 화가로서의 야심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며 더욱 인상을 깊게 합니다.

신학자 발터 니그는 <렘브란트-영원의 화가>라는 책에서 <렘브란트 작품의 본질은 오직 종교적 해석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렘브란트는 그만큼 성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유화나 소묘뿐 아니라 에칭 화가라 할 만큼 동판화도 많은데 이번 그의 에칭 컬렉션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동판화의 숨은 매력과 색다른 뉘앙스에 흠뻑 빠지게 해 평소 판화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판화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예술 형태라고 확신하고 그림에 쏟은 정성이나 시간 못지않게 동판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생전 300점이 넘는 걸작들을 남긴 사실 하나만으로도 렘브란트는 세계 미술사상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유일한 그의 유화 <나이 든 여인의 초상>도 빛과 어두움의 극명한 조화로 그가 왜 <근대적 명암의 시조>라고 불리우는지를 확인케 하지만, 많은 에칭들도 하나같이 절묘한 명암의 대비를 통해 회화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1653), <돌아온 탕자>(1636), <목동들에게 이른 예수 탄생 소식>(1634) 등은 정말 유화 이상의 강렬한 명암의 깊이와 전율로 거장의 열정과 숨결을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그저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명암 배분의 달인으로만 알았던 렘브란트, 그러나 그는 수많은 에칭 초상화와 자화상에서 보듯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다양한 주제의 성화가 말하듯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과 고뇌를 그린 <영원의 화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