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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11월 30일 주일낮예배/대림절 첫째주일<br>
본문: 사 61:1-3<br>
제목: 곧 오소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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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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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오늘이 벌써 대강절 첫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고대하는 기간이 대강절입니다. 여러분 왜 성탄절을 준비해야 합니까? 왜 주님의 성탄을 대망해야 합니까? 주님은 올해도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고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십니다. 주님은 예외 없이 올해도 성탄하십니다만, 반드시 성탄을 고대하는 자에게만 오십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최소한 한 달은 기다리면서 자신을 철저히 비워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환자가 있었지만, 굳이 주님은 38년 된 환자를 찾아가셨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기다리고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찾아가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환자에게 호출당해 가신 겁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채비되고 대망하고 준비된 자에게 가십니다. </p>
<!-- paragraph:p0004 -->
<p>성탄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2000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탄생을 회고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까? 주님의 성탄은 2000년 전에 일회적으로 있었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년 새로운 감격으로 체험해야 할 실존적인 사건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지구촌 모든 나라와 민족이 초유의 금융위기라는 환난과 인도와 태국의 불안함으로 더 주님의 성탄이 절실해 졌습니다. 부디 한 달간의 대강절을 통해 착실히 준비하셔서 올해도 주님의 성탄을 뜨겁게 체험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p>
<!-- paragraph:p0005 -->
<p>올해도 성탄 하실 주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어떤 축복을 주님이 허락하십니까? 우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십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 상한 사람은 많습니다.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님이 고쳐주신다는 겁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그 시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것이 어찌 이사야 시대의 모습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실정아닙니까? 멀쩡하다고 시침떼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마음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면 우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신다는 겁니다. 본문 1절 마지막 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라고 했는데, 성탄이 정말 아름다운 소식아닙니까? 이사야 42장 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원래 갈대는 잡초입니다. 농부들에게는 가장 성가신 풀입니다. 더구나 그게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 상한 갈대를 버리지 않고, 꺾지 않고 싸매고 고친다는 겁니다. 올해는 마음이 상해서 자살한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황폐한 마음을 고쳐주시기를 빕니다.</p>
<!-- paragraph:p0006 -->
<p>다음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한다고 합니다. 이사야가 이 본문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사람이 앗수르에 잡혀가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서 주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성탄하십니다. 그때는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온갖 수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사야의 메시지는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노예나 포로가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정 자유인인가? 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십니까? 우리는 마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중 몇이나 돈이나 권력, 탐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포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순이요 분열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은퇴 장로님은 지금 84세인데, 지난 45년간 백번도 더 결심하고 금식하며 혈서를 썼으나 아직도 담배를 못 끊고 있습니다. 금연학교도 여러 번 다녀오셨습니다. 내 의지나 내 힘으로는 절대 자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가능케 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주님은 한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자유하라.”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한 마디에 38년 된 중풍병자가 걸어갔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다음으로 슬픈 자를 위로하시기 위해 메시아가 오십니다.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화관을 씌우시고,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을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쁨 속에 살고 싶지만 슬픈 존재입니다. 우리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어디에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몇일 전에 또 다시 전방 모 부대 내부반에서 수류탄 폭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겁니다. 군대 생활에 가장 큰 애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나 전에는 여기저기서 욕이고 터집니다. 그런데 군에서는 어디 가서 훌쩍일 곳이 없습니다. 위로받을 데가 없습니다. 이게 사람을 삭막하게 합니다. 실은 이것도 다 부질없습니다. 누가 과연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편? 아내? 자식? 친구? 동료? 목사? 여러분에게 이런 사람들이 위로가 됩니까? 그들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고, 외롭게 하며 슬프게 하는 장본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주님이 오시면 나의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신다고 합니다. 슬픔을 희락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바꿔 주시겠다는 겁니다. “외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올해도 예외 없이 슬픈 자를 위로하시려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얻지 못했던 뜨거운 위로를 주님을 통해 느껴야 합니다. 부디 주님을 뵙고 행복을 체험하는 복된 올해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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