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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1m 심판의 잣대(롬 2:12-16)

20121111m

롬 2:12-16

심판의 잣대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예수를 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훗날 죽으면 천국 못 갑니다. 아주 험한 곳에 갑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옛날 사람들, 저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개신교가 120년, 가톨릭은 220년입니다. 5000년 우리 역사에서 절대 다수는 복음이 뭔지,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퇴계 선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 지옥 갔습니까? 누구든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가는데, 그분들은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믿을 수 있었는데 믿을 수 있는 기회가 그분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를 잣대로 삼아 최후심판을 한다면 공정한 게 못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인류사의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 믿음이라는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믿음을 가장 강조하는 책이 로마서입니다. 믿음을 가장 강조하는 로마서가 바로 이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과 듣지 못한 사람을 같은 잣대로 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12절입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율법 시대의 범죄는 율법으로 심판하나, 율법이 없던 시대는 율법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 이전 시대는 무엇으로 심판합니까? 14절 상반절을 보면 ‘율법 없는 이방인의 본성’이라는 말이 나오고, 15절 상반절을 보면,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된다’고 합니다. 즉 율법 이전의 이방인에게는 양심을 잣대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율법 이후, 이를테면 복음시대는 믿음이 잣대가 됩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복음시대는 믿음이 심판의 잣대가 되고, 복음시대 이전 구약시대는 율법이 심판의 잣대가 되며, 율법 이전이나 율법시대를 살았으나 율법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그 심판의 잣대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억울한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5절 이하입니다. “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인이 마지막 날 와서 결산할 때는 각기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시대를 산 사람에게 복음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율법 이전 시대 사람들에게 율법의 잣대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삼국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기준삼아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문화, 모든 민족에게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잣대로 심판하시기에 누구도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고 항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공명정대하시고 공평무사하시기에 하나님의 심판행위에는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법정에는 억울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는 절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모든 시대를 심판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니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공자님도 부처님도 구원 받아 지금 천국에 계시겠지요? 죄송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성자나 교황 같은 사람이 다 천국 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황이 누구입니까? 교황에게는 천국 문 열쇠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황이 천국 갔을 까요?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님이나 부처님이 성인이시지만, 그분들이 천국에 갔다는 사실을 누구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오늘 본문 앞인 11절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 중심을 꿰뚫고 계십니다. 역사상 둘도 없는 사기꾼이었는지 위대한 성인이었는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율법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5절입니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33절입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자타가 공인한 의인들을 향해 주님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후심판 날에 주님은 그들을 향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목사라고 장로라고 기도원 원장이라고 다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공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라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성자요, 도덕 군자요, 종교 창시자요, 철학의 거성이라 해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합니다. 율법이든 양심이든 인간 본성이든 하나님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유대교 기준에 의하면 절대 창녀나 세리는 천국 못 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이 먼저 천국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이 시대는 복음시대며, 심판의 잣대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그 구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심판 잣대입니다.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믿지 않으면 심판 받아 지옥 갑니다. 복음시대의 불신자들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복음을 접하고도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신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전했음에도 안 믿는 사람은 본인 책임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복음시대를 살면서도 제대로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 못 믿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아직도 십자가가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재림과 영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런 사람들의 심판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물론 본인들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겠습니다만, 구약 에스겔 3장 17절 이하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내 이웃이나 가족이나 동족이 심판을 면치 못했다면, 그 사람의 심판에 대한 책임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의 나팔수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의 나팔수로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전해 들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복음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불신자들의 영혼에 대하여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연대 책임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무책임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나 하나만 예수 잘 믿어 구원받으면 땡이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사명자들입니다. 복음의 나팔수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복음을 전해 준 것처럼 나도 복음의 나팔을 다른 사람을 향해 불어야 합니다. 


올해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여러분이 살아오시면서 얼마나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절대 유별나게 믿는 어떤 사람들의 몫이나 목사들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전도는 못 하셨을지라도 내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얼마나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곡물만 추수해서 감사해서 되는 게 아니고 영혼을 얼마나 추수했는가도 주님 앞에서 결산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다시 한 번 영혼의 추수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기도하고 결단하는 성도들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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