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4n 할렐루야(시 1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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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n 성가대 헌신예배
시 150:1-6
할렐루야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은 전부가 노래입니다.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표제어들을 보시면, 4편 같은 경우 인도자에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등 다 노래입니다. 8편의 깃딧은 오늘날 기타의 원조이고, 7편의 식가욘은 묵상이란 뜻입니다. 150편은 이를테면 전체 시편의 결론입니다. 결론답게 할렐루야로 시작해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예배는 피조물이 조물주인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하나님과 교감합니다. 기도로 교감하고,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만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애를 써야 합니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얼마나 소중한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예배는 한 주간을 살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한계로 인해 완전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예배는 완전합니다. 요한계시록 4-5장은 사도 요한이 천국에 가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예배를 목격한 목격담입니다. 천국 예배의 중요 특징 중 하나가 찬양입니다. 마치 시편 150편과 같습니다. 할렐루야로 시작해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는 설교도 없습니다.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쓸 일이 없지 않습니까. 목사들은 천국 가면 다 실업자가 됩니다. 그러나 성가대원은 몸값이 오릅니다. 천국에서 계속되는 것은 찬양뿐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네 생물의 찬양이 나옵니다. 4장 11절을 보면 24장로들의 찬양이 이어지고, 5장 9절을 보면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찬양이, 11절에서는 천군천사의 찬양, 흰 옷 입은 자들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천국에서는 오직 찬양만 있습니다. 그래서 존 번연이 지옥에는 불만이 가득하고, 천상에서는 찬양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찬양에 그토록 행복해 하실까요? 찬양은 우리 영혼으로 부르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우리 영혼으로 노래하는 겁니다. 그래서 찬양은 예배 구색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예배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성가대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열심히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찬양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명실상부한 성가대원이 됩니까? 에베소서 5장 17절 이하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음악적 소양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영혼으로 부르는 사람이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서 은혜가 고갈되면 찬양도 메말라집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인 기독교도가 믿음이 다운되면 그 입에서 제일 먼저 찬양이 사라집니다. 성령 충만과 믿음의 정도는 찬양과 정비례합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참회의 시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지은 시인데, 12절을 보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받은 구원을 잃어버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을 잃습니까? 구원의 기쁨을 잃습니다. 이렇게 되면 찬송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범죄한다고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회수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원으로 인한 행복은 잃습니다. 그러면서 찬송이 내 입에서 증발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도 이어지는 14-15절을 보면,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범죄하여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니까 찬송이 실종된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회개하면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고, 나로 하여금 내 혀로 주를 찬송케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 충만의 정도를 알려면, 여러분의 찬양 생활을 확인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입에 찬송이 살아있습니까? 찬송이 힘들고, 찬송을 불러도 들어도 감동이 없으면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겁니다. 혀나 목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으로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 찬양해야 합니까? 기도는 어려울 때 많이 합니다. 찬양은 대개 즐거울 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찬양은 기쁠 때만이 아니라 절망 앞에서도, 풍랑을 만나 파선 당한 배 안에서도 부릅니다. 찬송은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겁니다. 날 잡아 부르는 게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흰 옷 입은 성도들이 밤낮으로 찬양한다고 합니다. 잠 잘 때도 찬양하며 주무셔야 좋은 꿈을 꿉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힙니다. 맞아서 등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 둘은 찬송합니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나고 족쇄가 풀리고, 옥문이 열립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노래 부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실성한 듯 보이고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찬양하며 기적을 못 만나는 이유는 세상 사람의 가락과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남 욕할 때 나도 욕하고, 남 원망할 때 나도 원망하니까 그렇습니다. 신세타령이나 땅 치면서 통곡할 때 찬양하시면, 거기에서 우리는 기적을 만납니다. 역대하 20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지금 유다에 암몬과 세일 사람들이 연합하여 침공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 왕이 한 일은 군대 편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찬양대를 조직해서 가운까지 입혀 오합지졸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여호와를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적들이 그날 밤에 서로 살육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군이 대승했습니다. 성가대원은 이를테면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선 성가대입니다. 여러분이 힘차게 찬양해야 우리를 위협하는 연합군을 무찌릅니다. 찬양하면 상황이 바뀝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우리를 결박한 족쇄가 풀립니다. 바울과 실라를 옥에 넣은 간수가 부복합니다. 그 간수의 집이 교회가 됩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찬양이 놀라운 기적을 연출하는 큰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본문 마지막 절을 보면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호흡을 다 할 때까지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십시오. 우리 삶이 복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결론이요, 우리 인생의 본분입니다. 주일예배 때 성가대석에서만 찬양하지 말고 여러분의 호흡이 다 할 때까지, 천국 가서까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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