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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m 가라지의 비밀(마 13:24-30, 36-43)

20121104m

마 13:24-30, 36-43

가라지의 비밀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여러분은 가끔 이런 의문 안 생기십니까? 선하신 하나님, 그것도 절대적으로 선하시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많은 악이 존재할까? 악이 넘쳐날까? 구약 하박국 선지자도 일찍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며 하나님께 답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우신데 어떻게 죄악이 판을 칩니까? 어떻게 의인이 고난을 당합니까? 이 모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부조리한 세상을 하나님이 왜 심판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는 우리에게 보통 시험거리가 아닙니다. 난해한 수수께끼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신정론(神正論, theos + dike)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실 때 많은 사람이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중 대제사장의 종 말고도 왔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리자, 주님이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고 하시며 그의 귀를 붙여주십니다. 그때 말고가 어떻게 했습니까? 당장에 감동해서 예수님 편에 붙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가 회심해 예수님 쪽으로 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이게 세상의 모순입니다. 그런데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왜 이 모양일까? 라는 물음이 신정론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도 신정론입니다. 주인은 고르고 뽑아 좋은 씨앗을 옥토에 뿌렸는데, 나중에 보니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도 났다는 겁니다. 가라지가 어디서 왜 생겼습니까? 어떤 농장주가 좋은 땅에 좋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곡식이 잘 자라는데, 처음에는 눈에 안 보이더니 여기저기서 밀과 흡사한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라지는 벼와 함께 자라는 피와 같고, 보리밭의 깜부기와 같습니다. 잡초입니다. 종들이 깜짝 놀라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고 있으니, 당장에 가서 뽑아버릴까요? 주인은 가만 두라고 합니다. 뜻밖의 대답입니다. 추수 때까지 가만두라고 합니다. 36절에도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 곧 주님 자신입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 가라지를 심은 사람은 마귀, 추수꾼은 천사,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라고 하십니다. 단순하고도 명쾌한 해설입니다. 이윽고 가라지의 최후를 말씀합니다.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 나오는 풀무불은 대장간의 불입니다. 쇠도 녹이는 불 말입니다. 마지막 하나님 심판의 불은 풀무불인데 타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불입니다. 이러한 가라지의 최후와는 달리 알곡들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43절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지금 함께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살 때는 구분이 잘 안 되나, 추수 때가 되면 이 둘의 운명은 극단하게 갈립니다. 지금은 주인이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했기 때문에 알곡과 가라지가 뒤섞여 살지만,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주인의 곡간에, 가라지는 영원한 풀무불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온갖 악이 넘쳐나는 걸까요? 저도 교회 밭에서 작물을 재배를 해보면, 잡초들 때문에 농사를 못 짖습니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아주 지독하고 무섭습니다. 가라지는 심은 적도, 비료를 준 적도 없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집니다. 악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파괴적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소식은 미담보다는 흉악한 소식이 더 많습니다. 죽이고, 훔치고, 사기 친 얘기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좌절하고 회의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인가? 정말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신가? 하나님이 심판주라면 왜 마냥 지켜만 보고 계시는가? 그런데 얼마나 세상이 불공평합니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신데 왜 역사는 거꾸로만 가고 있을까? 이게 신정론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인데 왜 세상은 이 모양인가 라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 번 당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시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본문도 주인이 분명 좋은 씨만 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느냐는 겁니다. 교회도 원래는 알곡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5절입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8절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원수가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그 원수가 마귀라고 하십니다. 마귀가 주인의 밭을 유린한 주범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하수인이요 마귀가 진범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알곡을 뿌리듯이 마귀도 밤을 틈타 자기의 종자를 뿌립니다. 왜 심지도 않았는데 가라지라는 못된 독초가 나는 줄 아시겠습니까? 마귀의 짓입니다. 알곡들을 해치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사탄의 공작입니다. 이게 바로 가라지의 비밀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 악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종들이 당장 가라지를 뽑을까요? 라고 하니 주인은 추수 때까지 두라고 합니다. 추수 때는 세상 종말, 심판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가장 답답한 부분입니다. 당장 낫을 대거나 뿌리를 뽑으면 좋겠는데 주님은 가만 두라고 합니다. 그것도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하십니다. 이게 주님과 우리와 덜 맞는 부분입니다. 당장에 심판하고 싶어도 주님은 추수 때까지 참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도 하나님은 가만히 두십니다. 제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이 제게 항상 그렇게 했습니다. 그 노총각 선생이 10살 연하의 신부까지 맞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왜 저 사람을 가만 두냐고 했습니까? 그러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 저를 격려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신 주님 말씀의 진정한 목적은 가라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29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알곡을 위해서입니다. 가라지 한 포기 뽑으면 알곡 몇 포기가 뽑힐지 모릅니다. 추수 때까지 심판을 유보하시는 겁니다. 추수 때 풀무불에 던진다고 하십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이 아무리 득세하고 가라지가 승승장구한다 해도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가라지의 종말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가라지와 함께 운명적으로 세상 끝까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시험도 당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겁니다. 교회와 사회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는 금물입니다. 가라지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현실 교회에 대해 좌절하거나 세상에 대해 절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라지들이 있기에 어디든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마귀의 장난에 더는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합니다. 25절을 보니 원수가 언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냐면 사람들이 잘 때라고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잘 때 교회에도 사회에도 가라지를 뿌립니다. 성도들이 잘 때 개인의 심령에도 그 가정에도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근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졸거나 자다가는 그야말로 무방비로 당합니다. 마귀는 야행성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깨어 있으면 우리 방어선을 뚫지 못하지만 자면 당합니다. 우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두려워 우리를 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때 마귀가 자기의 종자를 뿌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마귀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알곡들을 넘어뜨리려는 겁니다. 41절입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귀는 알곡을 가라지 되게 하지는 못합니다. 알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곡입니다. 가라지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인 알곡을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니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내가 알곡이라는 사실 하나로 안도할 수 없습니다. 혹 내가 졸 때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지 않을까 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훗날 더는 그 어떤 모순, 갈등, 아픔, 부조리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알곡으로 해와 같이 빛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디 깨어 근신함으로 마귀의 그 어떤 장난에도 희생되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키는 성도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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