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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부분만을 평가하여 &lt;이게 저 사람의 모습이다&gt;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일이야말로 참 무모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그렇게 일방적으로 남을 단정해 버립니다. 문제는 한 번 그런 식으로 판단하게 되면 오로지 그 잣대로만 상대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 규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그게 얼마나 상대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고도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삶 속에 미쳐 내가 보지 못한 또 다른 내면세계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간 평가의 문제는 그 방식이나 기준, 또는 내용보다도 언제나 자기의 평가가 결정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최후의 결론인양 착각하는 습성에 젖어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lt;최후심판&gt;과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데 그 위험성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의 소관이며 우리는 오히려 그 하나님의 최종 평가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단지 인간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만이 허용되어 있을 뿐입니다. </p>
<!-- paragraph:p0002 -->
<p class="p2"><br></p>
<!-- paragraph:p0003 -->
<p class="p2">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음행한 여인 이야기를 보십시오. 무리들은 다 돌로 치고자 했으나 주님은 &lt;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gt; 하셨고, 여인에게도 &lt;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gt;고 하셨습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무리들과 주님의 시각이 어쩌면 이렇게도 서로 다를 수 있을까요? 무리들은 &lt;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율법에 따라 심판해야 한다&gt;는 주장이었으나 주님은 &lt;비록 죄를 지었을망정 내일은 누구보다도 성결하게 살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gt;라는 입장이셨습니다. 이를테면 주님은 산 자를 산 자로 보신 반면 무리들은 산 자에 대해 고정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죽은 자로 본 것입니다. 아무리 고약한 죄를 범했을지라도 살아 있는 한 그는 여전히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것이 주님의 시각이셨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미래의 빛 앞에서 봐야 합니다. 과거로 현재를 규정하고 단정하는 것은 곧 산 자를 죽여서 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두고 &lt;누구의 죄 때문이냐&gt;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lt;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gt;(요 9:3)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죄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lt;무엇 때문이&gt; 아니라 &lt;무엇을 위해서&gt;입니다. 주님이 늘 죄인들을 상대하시며 스스럼없이 그들을 영접하신 것도 다 그들을 과거에서 보지 않고 미래에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눈에는 언제나 필연성이 아니라 가능성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2">주님은 남을 &lt;비판하지 말라&gt;고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비판정신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 등으로 판단한 우리의 비판을 함부로 절대시하지 말라는 경계셨습니다. 먼저 자신의 눈 속에 박힌 커다란 들보를 깨닫고 자만 대신 겸손의 눈으로 이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자칫 자신을 &lt;오류 없는 절대적 심판자의 자리&gt;에 세우는 터무니없는 교만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치열하게 대결하셨던 바리새파와 서기관, 제사장 등 유대교 지도자들이 늘 그런 심판자의 모습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목에 잔뜩 힘을 준채 지극히 편협하고 위선적인 평가로 누구는 죄인이고 누구는 의인이라는 식의 심판을 일삼았습니다. 남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은 늘 그 마음속으로 수많은 이들을 처형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이미 마음속에서 내린 판결을 실제 집행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에 대한 평가로 이러쿵저러쿵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종평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어느새 11월, 속절없는 세월은 올해도 벌써 주님과의 연말결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레 좌절하거나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실적으로 판단하시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희망의 눈으로, 내일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바라보십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까?</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