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1m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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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1m
눅 16:1-9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본문의 청지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 8절에는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도 합니다. 이미 주인에게 잔뜩 손해를 입혔는데, 주인이 해고하려고 하니까, 주인과의 결산을 앞두고 또 다시 이상한 짓을 해서 주인에게 더 많은 피해를 끼쳤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자기가 일방적으로 탕감해 준 겁니다. 기름 백 말 빚진 자에게는 오십 말,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팔십 석으로 탕감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다가 그렇게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기름 백 말에서 오십 말이라고 하면, 고대문서에 의하면 올리브 나무 146그루에서 백 바트(말)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73그루의 올리브나무가 필요한 분량이 50말입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주인에게 폐를 끼쳤다 해도, 마지막에 행하는 청지기의 이 행동은 무엇입니까? 해고하는 주인에게 복수하는 걸까요? 본문 3절 이하를 보면,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실직 이후를 생각해서 주인의 자산으로 자선을 한 겁니다.
그런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이 불의한 청지기의 말도 안 되는 행동에 대해 주인이 보인 반응입니다. 8절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미 막대한 손해를 입혀 해고하려던 청지기가 마지막에 대형사고를 쳤는데도, 그를 요절내는 대신에 지혜롭다고 칭찬합니다. 이어지는 9절 말씀은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겁니다. 직역하면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라는 말입니까? 목적이 좋으면 수단과 그 과정은 다 정당화된다는 뜻입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뜻입니까? 우선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대목을 보십시오. 곧 내보낼 청지기가 또 다시 막대한 손해를 끼쳤음에도 그를 징계하지 않고 칭찬한 것은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실직 이후의 자신의 거취를 준비한 청지기의 비상한 노력, 비상한 발상을 높이 산 것입니다. ‘너 참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대목에 오늘 주님이 이 난해한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은 세상 사람들이고, 빛의 아들들은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모험적이며 책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전투적이냐면, 그게 악한 짓이냐 선한 짓이냐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자기의 미래를 위해 도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의 미래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필사적이고 호전적이어야 할 사람들은 빛의 아들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아니라 영원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보다 천국 가서 사는 게 더욱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야말로 미래를 위해 전투적이어야 하고, 호전적이어야 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맹탕이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투자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요 비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천국을 위해 우리가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적극적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론적 실존을 살아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토록 필사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를 보십시오. 제 돈도 아닌데 주인의 돈으로 몰래 자기의 실직 이후를 준비하며 미래를 사고 있습니다. 비록 터무니없고 교활한 짓이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우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미래에 대해 무책임한 자들아!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 자선을 하고, 탕감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갑니다. 그러나 잠시잠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천국에 가면 우리가 누릴 영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이 땅에서 준비하고 투자한 사람들이 누릴 영원한 영광입니다.
오늘 불의한 청지기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비상한 노력과 결단으로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만 영원한 복락이 보장됩니다. 나는 천국 가는 것으로 족하다는 사람은 영원히 부끄러운 구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세상 사람보다 못하다는 주님의 책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해의 빛, 달의 빛, 별의 빛이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의 빛도 그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아들들이 미래를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답이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불의한 재물은 절도나 강도, 뇌물, 도박, 투기로 번 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불특정 재물 일반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화를 주님은 일단 불의하다고 보셨습니다. 재물 그 자체는 불의하지 않으나, 사람들이 그 재물을 불의하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칼을 강도가 쓰면 악하게 사용되고, 의사가 쓰면 치료의 도구가 됩니다. 칼은 가치중립입니다. 나는 아무리 정당하게 벌었다 해도, 세상은 이미 구조악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구조악인 세상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 돈이 악한 겁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태초에 빅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절대무로부터 모든 재화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 주권 또한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owner)이 아니라 관리자(manager)입니다. 우리 중 누가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신중하게 재물을 집행합니까?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10/10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헌금을 하면서도 내 돈으로 주님께 불우 이웃돕기 하듯 합니다. 그만큼 청지기가 주인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수중의 돈을 주님의 뜻대로 쓰지 않고 있습니다. 무섭도록 철저하게 내 뜻대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악하고 불의한 청지기요, 우리 수중의 재물은 다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위해 보다 책임적인 삶입니까? 어떤 게 종말론적 인생에 걸 맞는 삶입니까? 그게 현실적으로는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불의한 청지기처럼 그것으로 이웃으로 사라는 것입니다. 모험적으로 자선하며, 남을 도우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것은 영원한 처소의 약속입니다.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면, 후에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허비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는 교활하지만 주인의 재물로 사람을 삽니다. 자신의 미래를 삽니다. 이점을 주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너희는 대체 뭐하냐고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라도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 투자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삶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책임적이기를 바라십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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