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총명 있는 자들아(욥 34:16-27)

20121019
총명 있는 자들아
욥 34:16-27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16절).
<총명>이란 뜻의 히브리말 <사칼>은 이해하다, 파악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사 44:18)며 총명을 잃은 이스라엘을 심히 안타까워 했습니다.
엘리후도 지금 욥의 총명을 아쉬워하며 그의 하나님 이해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미워하지 않으신다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17절).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라>(암 5:24)고 하셨습니다. 공의란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의 근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공의로우시지 못하다면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범하시는 것에 다름 아니게 됩니다.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지만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지만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있게 하셨네>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않으신다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19절).
하나님은 결코 외모로 사람을 판단치 않으십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그 중심을 보실 뿐 그 사람의 이력이나 지위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묘사한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하나님은 당신이 거하실 성막의 재료로도 볼품없는 싯딤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성형 열풍은 외모지상주의가 부른 필연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고 아름답다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거나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또 아무리 외모를 가꾸고 고쳐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 인생은 절대 복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세력 있는 자를 꺾으신다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24절).
하나님은 항상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암 5:9). 인간이 좀 가졌다거나 배웠다고, 혹은 지위나 명예가 남다르다고, 건강하고 다복하다고 교만하거나 절대 잘난 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 한 방이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조사할 것도 없이 꺾으신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오래 갈 것도 없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 할 필요도 없이 그게 지위든, 사업이든, 건강이든, 가족이든 단 한 방이면 모든 게 무너지고 그 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마십시오. 세력 있는 자를 오히려 꺾으시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깊이 신뢰하며 늘 겸허하게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