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4m 강청(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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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4m
눅 11:5-13
강청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교회도 다음 주 월요일부터 4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도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하기 쉬운 게 기도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기도입니다. 누구나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기도 같으나 가장 모르고 있는 게 기도입니다. 기도를 전문으로 하는 기도원 원장도 기도를 잘 모릅니다. 정말 기도는 신비입니다. 영원한 비밀이요 수수께끼라는 말이 맞을 겁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떼쓰는 겁니까? 하나님께 구걸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협박하고 하나님을 위협하고 윽박질러 내 소원을 따내는 겁니까?
본문 8절 하반절입니다.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기도는 근본적으로 간청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유명한 9절 말씀도 보십시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간청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판 성경은 간청인데, 개역성경은 강청이라고 했습니다. 강력한 요청, 주문, 요구라 했습니다. 원어적으로는 간청보다는 강청이 맞습니다. 왜냐면 뻔뻔스러운 요구라는 게 원어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간청보다는 강청이 좀 더 원어에 가깝습니다. 기도는 강청입니다. 수치심 없는 뻔뻔스러운 요구입니다. 기도는 절대 송구스런 부탁이나 구걸행위가 아닙니다. 마치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당당하게 내 돈 내 놓으라 요구하듯이 강청입니다. 그럼에도 그게 무례하거나 결례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강청이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안해서 가급적이면 기도 안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자꾸만 하나님께 뭘 해달라고 하는 게 송구스럽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도 양심도 아닙니다. 아직도 기도가 뭔지 모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조르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마저 하나님을 괴롭혀서 되겠느냐고 합니다. 기도를 참고 자제하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배려가 아닙니다. 이 사람도 아직 기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당당한 요구이며 강력한 청구이며 떳떳한 내 권리의 행사입니다. 이 부분이 충분히 이해되어야 자세가 잡힙니다.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니 어떤 사람이 늦은 시간에 손님을 맞습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서 떡을 좀 달라고 합니다. 집안에 있던 친구가 이미 잠자리에 들어 안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먹을 것 구하러 갔던 친구가 강청합니다. 늦은 밤에 남의 집에 떡을 얻으러 온 주제에 이렇게 뻔뻔하고 당당하고 무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강청이요 기도라는 겁니다. 주님 말씀의 취지가 바로 이겁니다. 결국은 잠자리에 든 친구가 항복하고 떡을 내줍니다. 너의 강청에 내가 못 견디겠다는 겁니다. 이게 기도요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밤에 친구를 찾아가 먹을 것을 요구한 사람은 무슨 자격으로 잠자는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며 뻔뻔하게 요구하며, 또 잠자리에 들었던 친구는 어째서 떡을 내 줍니까? 당연히 그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죽마고우였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둘 도 없는 친구지간이었기에 그 무례하고 뻔뻔한 강청이 통한 겁니다. 기도는 부탁이나 구걸이 아닙니다. 간청이 아닙니다. 간절한 바람, 요구, 부탁이 아닙니다. 철면피한 요구, 강청입니다. 주님의 생생한 비유입니다. 강청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친구지간이 아닙니다. 부모자식입니다. 11절 이하입니다.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부모에게 슬픈 표정을 지으며 구걸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자식에게 동정하고 적선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제가 맡겨 놓은 것도 아닌데 자식이 내 놓으라고 하면 부모는 자다가도 일어나 다 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자식이 웬수입니다. 이게 부모된 죄요 자식된 권리입니다. 운명이요 숙명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바로 이런 겁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뻔뻔한 강청입니다. 그래서 떳떳한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특권이고, 응답은 아버지된 하나님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기도는 신분입니다. 관계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기도 합니다. 기도는 기술, 요령, 방법,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시를 쓰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좋은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받아내려고 합니다. 응답받는 요령을 배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불쌍한 표정을 짓고 주님께 구걸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관계요 자격이며, 우리의 권리입니다. 그래서 강청입니다. 미안해하거나 송구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된 죄로 우리에게 다 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우리 기도는 항상 비굴하고 비참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에 탄력이 없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기도가 우리의 권리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본문의 이 사람이 친구 집에 찾아가 강청하지 않고 간청했던들 떡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선처를 바란다며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면 떡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요? 주님의 비유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신 겁니다. 처음부터 자격, 관계, 권리를 들이대며 밀고 나갔기에 결국 항복을 받아낸 겁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도 자식의 강청 앞에서 약하다고 시인하십니다. 13절 상반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악한 너희도 자식이 강청하면 좋은 것을 줄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겠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13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가 강청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되 너희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성령을 주신다는 겁니다. 얼핏 보면 이 대목은 앞뒤가 안 맞는 동문서답 같습니다. 그러나 이게 정답이요 근본적인 응답입니다. 강청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보혜사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해결사입니다. 성령이 우리 기도에 진정한 응답입니다. 이것이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이 문제도 저 문제도 수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오직 성령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강청하는 게 그 순간 다 해결되고 수습됩니다. 그래서 강청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응답이요 해답입니다.
기도하는 게 무슨 계절이 따로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기도하기에는 가을이 제격입니다. 기온도 적당하고 연말결산도 준비하기에 좋습니다. 이 가을에 강청이라 이름하는 기도생활에 정진하십시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해결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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