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서풍에 붙이는 노래

지난 화요일 오후 전도부원들과 함께 가까운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샛노란 은행잎에 숨이 막히고 자줏빛 단풍잎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저 화려한 잎들을 다 서풍에 날려버리고 모든 영양을 오직 본체로만 빨아들일 것입니다. 차디찬 밤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이를테면 내실화를 꾀화는 것입니다.
언젠가 알프스 고지에서 강풍에 쓸려 모두가 비스듬히 누운 겨울나무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그렇게 다 죽은 듯이 보이던 나무들도 봄이 되면 다시금 두꺼운 목피를 뚫고 마치 기적과도 같은 새생명의 움을 틔웁니다.

영국의 시인 셸리(Percy B. Shelly)의 <서풍에 붙이는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기껏 웃어 본다는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한없는 슬픔이 깔려있네.> 

그러나 그는 다시 희망을 외칩니다.

<오, 서풍이여. 겨울이 온다면 봄 또한 멀지 않았으리!>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지구촌에 불어닥친 모진 환란의 바람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며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오면 봄이 머지 않았음을 믿는 사람들을 결코 밤이나 겨울에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밤이란 지나간 시간에서 보면 점점 더 깊어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이나 내일을 깃점으로 보면 그만큼 새날에 가까워진 것이 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막힌 것 같고,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만큼 어두움이 짙은 것 같아도 그 암흑의 틈새로 비쳐오는 내일의 여명을 앞당겨 보면서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고 호소했습니다. 깊은 밤을 마치 낮인 듯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을 낮인 듯 사는 자의 삶은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자의 삶입니다. 또 새날을 기다리고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끄러움 없는 내일을 맞기 위해 밤을 모든 때묻은 것, 더럽고 추한 악습을 훌훌 털어버리는 기회로 삼습니다.
겨울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 자기 스스로는 떨칠 수 없는 낡은 잎들을 말끔히 날려버리듯이 지혜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이 닥칠 때 흔들리는 삶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환란의 바람을 이용해 자기의 삶의 장애물들을 과감히 정리해 버립니다.

우리는 늘 위기 속에서 삽니다.
위기는 어느 한 때만이 아니라 순간순간 우리의 삶을 엄습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굳게 붙잡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자고 한 것도 결국은 보다 튼튼한 것, 보다 참된 것을 붙잡기 위해선데 그게 바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지금은 확실히 낮이라면 해가 기우는 황혼이요, 밤이라면 깊은 밤인 환란의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현실은 자칫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거나 아니면 밤의 전경에 취해사는 밤의 인생으로 전락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듯 굳게 붙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그 점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확인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제발 절망하지 마십시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