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1007m 네 소원대로(마 15:21-28)

20121007m

마 15:21-28

네 소원대로!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사건의 무대는 두로와 시돈 지방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팔레스틴이 아닙니다. 이방 땅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이 어떤 가나안 여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가나인 여인은 가나안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가나안의 후손들입니다. 원래 팔레스틴에 살다가 이스라엘에게 쫓겨난 족속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은 앙숙관계입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주님이 그 이방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세상에 이런 찬사가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평생 이런 말씀 한 번 못 들어봤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날마다 믿음이 작다거나 없다고 책망만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 장인 14장 31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제자 대표인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다음 장인 16장 8절도 보십시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이렇게 제자들은 믿음이 작다, 없다며 책망만 듣고 있을 때 이 가나안 여인은 네 믿음이 크다는 칭찬과 함께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어지는 본문 28절 하반절을 보니 주님의 말씀과 동시에 그 여인의 딸이 나았다고 합니다.

 

2012년도 석 달도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의 올해 소망을 다 이루셨습니까? 정말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여러분의 소원을 다 이루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가나안 여인에게서 배우십시오. 주님은 절대 은혜를 거저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대가를 바라신다는 뜻이 아니라, 반드시 그 은혜를 감당할만한 채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주십니다. 왜냐면 은혜가 헛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가 화가 아니라 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꼭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감당할 만한 지 시험한 후에 주십니다. 주님의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이 겪었던 시험을 보겠습니다. 어떤 수준과 난이도의 시험을 통과했기에 주님으로부터 그런 찬사를 들었을까요? 그녀는 주님의 침묵을 겪습니다. 그녀가 주님 뒤를 따르며 소리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하는데 주님은 한 말씀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딱한 노릇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제일 먼저 당하는 시험입니다. 주님의 침묵입니다. 나는 다급하고 절박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는데 주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자 우리가 가장 많이 실패하는 시험입니다. 우리는 성미가 급해 주님 하고 부르면 그래 나 여기 있다 하시는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만, 실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 7-80%가 이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집니다. 저도 40일 금식한 적이 있습니다. 40일 금식해서 응답이 안 되면 80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주님의 침묵은 순전히 고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금식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케이 하실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부르짖는 과부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래 참지 않으십니다. 오래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허무하게 절망합니다. 기도를 접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주님의 침묵 앞에서 체념하고 돌아서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며 외쳤습니다. 우리하고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침묵하시면 기도를 포기해 버리는데 이 여인은 오히려 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가나안 여인이 겪은 시험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녀를 막아섰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 이 여인을 쫓아 보내자고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여리고 소경 바디매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주님을 뒤따르며 소리치자 제자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나 주님의 측근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주님을 따르고 주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일에 복무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도리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쫓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잠잠하라고 꾸짖고, 주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의 진로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뵙고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데, 목사가 도움이 됩니까? 방해가 됩니까? 여러분이 교회 생활하는데 장로, 집사, 권사가 도움이 됩니까? 방해가 됩니까? 솔직히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방해만 안 되어도 다행입니다. 훼방만 안 해도 고맙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어떻습니까? 최근에 각 교단들이 총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칭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교단 총회 석상에서 그 교단 총무가 가스총을 뽑아들고 총대들을 위협했습니다. 또 용역을 불러 총대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으면서까지 총회를 파행으로 몰아갔습니다. 그게 그 교단 최고지도자들의 작품입니다. 가스총 뽑아든 모습을 일간지에서 다 보셨지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에게 상처받고, 장로에게 실망하고, 집사에게 상처받아 다른 교회로 떠납니다만, 거기에는 더 많은 원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주변 사람들에게 당하는 시험은 주님의 침묵보다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이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구원 얻도록 돕고 격려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내게 상처와 아픔을 줄 때 그녀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는 제자들과 시비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봤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반드시 이렇게 해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내 신앙에 장애가 되고 거침돌, 가시가 되는 사람을 바라보며 상처 받지 마시고 그 사람 너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나안 여인이나 바디매오는 그렇게 해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한 단계가 더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노골적인 거절입니다. 24절과 26절을 보십시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주님마저 이렇게 원색적으로 거부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타민족과 잡혼하는 것을 유대인들은 너무도 나쁘고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주님도 이 유대인들의 통념을 적용하시며 가나안 여인을 개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해 개 같은 너에게 던지는 게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심한 인종차별입니까? 그런데 이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도리어 주여 옳습니다. 맞장구를 칩니다. 맞습니다. 제가 개입니다. 그런데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납작 엎드립니다. 행여 그 여인이 자존심이 상해 주님을 떠났다면 큰 상처만 남았을 겁니다. 그녀는 분노하지 않고 제가 개가 맞습니다. 개에게도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즉각 주님이 너의 믿음이 크다고 합니다. 소원대로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본심이 아닙니다. 고의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난이도 높은 시험을 통과한 만큼 큰 은혜를 얻습니다.

 

진심으로 귀신들린 딸을 고치고 싶으십니까? 진심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싶으십니까? 끝까지 주님만을 따르며 바라보십시오. 자신을 더 철저하게 내려놓고 비우십시오. 그 시험을 다 통과해야 비로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간절한 여러분의 소원을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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