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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중재자의 본분(욥 3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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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2100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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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중재자의 본분</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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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욥 32:11-22</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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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유익한 조언자, 좋은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때로 말하기 힘든 내용도 담대하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는 오직 성령만이 그 조언과 중재가 혹 거절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과는 다른, 오직 상처입은 친구를 돕고 구하기 위한 가장 순수한 봉사요 희생이므로 참된 것이며, 또 누구나 진심으로 남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역에 쓰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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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내 영이 나를 압박함</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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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gt;(18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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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엘리후 역시 할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자니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쳤습니다(렘 20:9). 욥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 속에 가득찬 것입니다. 만약 욥과 논쟁을 벌인 자 중 한 사람만이라도 올바른 주제를 다루었던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아마 계속 침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핵심을 비켜 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그 부분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겁니다. 나이 든 자들의 지혜와 지식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때 하나님은 때로 또 다른 사람들, 심지어 젊은이들을 일으켜 그들의 속을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있는 말들로 가득 채우시기도 하십니다. &lt;내 영이 나를 압박한다&gt;는 고백이 바로 하나님이 지금 엘리후에게 그같이 하셨음을 뜻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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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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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새 가죽 부대 같음</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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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보라 내 배는 봉한 포두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gt;(19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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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속에는 할 말로 가득 차 있어서 성도들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싶은데 침묵을 강요당하고 구석으로 내몰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면 그 사람의 슬픔과 근심이 얼마나 크겠으며 또 가슴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포도주가 발효될 때 그 안에서 가스가 발생해 낡은 가죽 부대는 자칫 터지기가 쉽습니다. 새 가죽 부대 조차도 마치 터질 듯 팽팽해집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말을 함으로써 욥과 그의 친구들을 중재하고자 하는 엘리후의 내면적 압박감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lt;내가 이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gt;(20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하는 말은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lt;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gt;(마 9:17).</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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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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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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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gt;(22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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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성경은 가난한 자의 송사라 하여 무조건 두둔하는 것도 사건을 편협되이 처리하는 것과 같은 죄악이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하여 공의를 굽게 하는 것도 마치 힘 있는 자의 얼굴을 보아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과 같은 죄악이라고 합니다(출 23:3). 또한 어떤 사람이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그로 하여금 상황을 잘못 인식하게 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동정이라고 합니다(레 19:17). 엘리후는 지금 욥의 친구들이 명성이 높다 하여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실과는 다른 말을 하지 않겠다 하고, 자기가 젊었다 하여 명망 있는 자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진리를 호도하는 일 따위는 절대 범하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있습니다. 엘리후의 이런 결심은 그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무서워 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위선과 아부를 미워하시고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시 12:3).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위엄을 똑똑히 바라볼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또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죄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span><span>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