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욥 3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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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중재자
욥 32:1-10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엘리후 라는 사람이 개입하여 중재하는 대목입니다. 엘리후는 인과응보론의 세 친구와 또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욥의 허물을 동시에 지적하며 참 지혜를 깨닫게 합니다. 확실히 욥의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접근은 세 친구들과는 달랐습니다. 세 친구는 범죄로 말미암아 고난이 왔다고 회개를 촉구한 반면 엘리후는 오히려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교만한 태도로 인해 죄를 짓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엘리후의 분노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2-3절).
이제 무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세 친구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욥도 지쳐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중재자가 나설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부스 사람 엘리후입니다. 엘리후가 먼저 욥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욥에게 화를 낸 것은 그가 마치 자기의 명예가 하나님의 명예보다 더 소중하다는 듯, 자기에게 환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애쓰기보다 도리어 자기가 불의하기 때문에 환난을 당한다는 비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데 훨씬 더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엘리후가 세 친구에게 화를 낸 건 그들이 욥을 위선자요 악인이라고 단정하면서도 그것을 입증하지도, 또 욥이 제시한 결백의 증거들을 반박하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욥을 정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중재자로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의 잘못과 실수들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엘리후의 겸손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6절).
엘리후는 젊은 사람이었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결코 건방지거나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긴 시간 욥과 친구들 사이에 오간 말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들었습니다. 엘리후의 겸양은 이렇듯 그가 연장자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7절).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 <전능자의 숨결>, 즉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깨달음을 외면할 수 없어 중재자로 나섰노라고 합니다(8절). 믿는 자는 누구나 성령의 전입니다.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서 그때그때 계시와 분별과 지혜와 감동과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럴 때 바르게 응답하고 결단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이고, 그런 다양한 성령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악에 다름 아닙니다. 엘리후는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제 그 감동을 좇아 욥과 세 친구들 앞에 나서 그들을 중재하고 있습니다.
엘리후의 용기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10절).
그건 사실입니다. 어른이라고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니고 노인이라고 항상 정의로운 것도 아닙니다(9절). 오히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2JW 4:13) 낫습니다. 엘리후는 담대하게 <내 말을 들으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자제가 필요하고, 분수와 염치도 가져야 합니다. 또 성급함이나 경박함, 잘난 체 하며 분별없이 나서는 짓도 가능한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고, 성령이 감동하시고, 또 반드시 옳고 그름을 밝히고 양자를 중재하고 화해시키고 사태를 바르게 수습해야 할 상황이라면 단호하고도 권세 있게 <내 의견을 말하리라>며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엘리후에게서 배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