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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하나님의 재앙이 두려워(욥 3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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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20927</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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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하나님의 재앙이 두려워</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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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욥 31:16-23</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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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gt;(23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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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욥은 언제나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의식하며 산 사람입니다. 늘 범죄하거나 허튼 짓을 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율법시대의 하나님 이미지는 공의의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 상이 맞습니다. 복음시대의 하나님 이미지가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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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과부를 실망케 하지 않았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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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gt;(16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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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과부는 고와와 함께 유대사회의 소외계층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도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과 연민을 가지신다고 합니다.&lt;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시도다&gt;(시 146:9). &lt;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gt;(약 1:27). 따라서 욥도 지금껏 과부로 하여금 자기로 인해 실망케 한 적이 없노라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부가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면 지체하지 않고 나서서 그에게 힘이 되어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재앙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부에 베푼 선의 이상의 큰 축복을 허락하십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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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고아에게 아비처럼 하였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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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gt;(17-18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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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고아에게 아비처럼 했다는 얘기는 고아들을 돌보며 키웠고,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교육까지도 책임적으로 수행하면서 그야말로 그 아이들의 아버지처럼 사랑과 관심을 베풀었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고아를 입양하여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며 훌륭히 키워낸 어떤 양부모처럼 욥은 그렇게 많은 고아들을 양육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이라도 당한다는 듯 최선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에서 &lt;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gt;, &lt;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gt;(40, 45절)고 하셨습니다. 부디 욥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 계층의 이웃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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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헐벗은 자를 못 본 체하지 않았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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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lt;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 본 체했다면&gt;(19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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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헐벗은 자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아니면 입으로만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가난한 자를 놀리는 짓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욥은 가난한 자에게 밤에 덮을 겉옷을 주었고, 양털로 짠 따뜻한 옷을 적선하며 자선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선행이 추호라도 사실과 다르다면 &lt;내 팔이 어깨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gt;(22절)고 했습니다. 그는 진실로 &lt;하나님의 재앙이 두려워서&gt; 고아나 과부, 헐벗은 자를 돌보는 일에 인색하거나 무정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 자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에서 배제당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신념으로 주위의 헐벗은 자 약자들을 돕고 대변해야 할 것입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