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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lt;나의 상냥한 사람이여, 한가위 달을 혼자 쳐다보며 당신들을 가슴 하나 가득 품고 있소.&gt;(1954년 9월 한가윗날, 일본의 아내에게 보낸 이중섭의 편지 중에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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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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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저는 추석이 다가오면 꼭 떠오르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의 &lt;달과 까마귀&gt;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사십 세의 젊은 나이로 가난과 병에 지쳐 외로이 죽어간 고독한 화가의 말년 작품으로 1954년 경남 통영에서 그린 것입니다. 크고 노오란 보름달이 두둥실 뜬 맑고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굵고 검게 그어진 세 가닥 전깃줄에 앉은 다섯 마리의 까마귀, 보름달은 차라리 창백하고 까마귀들의 동작은 몹시 불안해 우울한 예감과 함께 지독한 쓸쓸함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한가윗 달은 화가의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자 재회를 비는 간절한 소망이었을 테고, 밤 까마귀의 불안한 날갯짓은 극도로 불운했던 자신의 삶과 뼈아픈 고독을 형상화한 것이었을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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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2">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외가가 있던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다녔고,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보 시절부터 소를 즐겨 그리는 미술학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테이코쿠 시립 미술학교에 입학, 거기서 후배인 일본 여성 마사코와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는 졸업과 함께 귀국했고, 1945년 광복 직전 천신만고 끝에 현해탄을 건너 원산으로 그를 찾아 온 마사코와 전격 결혼합니다. 그 후 두 아들을 낳고 짧고도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곧 6.25가 터지면서 1950년 12월 월남하여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먼 피난길에 오르는데 그 과정에서 모진 가난과 최악의 여러 현실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는 물감과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부두의 막노동으로 연명했고, , 제주도의 서귀포에서는 네 식구가 몸을 포개야 하는 단칸방에서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바다로 나가 게를 잡고 조개를 캐고 해초를 뜯어야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가족과 함께 했던 서귀포 시절이 가장 행복한 때로 기억됩니다. &lt;파란 게와 아이들&gt;, &lt;섶섬이 보이는 풍경&gt;, &lt;서귀포의 환상&gt; 같은 걸작들이 다 그 시절의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는 더 이상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때부터 이중섭은 홀홀 단신이 되어 미친 듯이 그림에 몰두하며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랩니다. 판잣집 골방에서도, 다방 한 구석에서도, 합판이나 담뱃갑 은종이에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제주도에 가면 꼭 서귀포의 &lt;이중섭 미술관&gt;을 들리려 했는데 야속한 태풍 때문에 그만. 이중섭과는 동향이자 오랜 지인이었던 고 구상 시인은 &lt;중섭에게 있어서의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의 전부였다&gt;, 또 &lt;그 이 만큼 그림과 인간이, 예술과 진실이 일치한 예술가를 보지 못했다&gt;고 했습니다. 이중섭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55년 구상 시인에게 &lt;이제는 교회에 나가 저의 모든 잘못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경을 배워 깨끗한 새 사람이 되고 싶다&gt;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1956년 이중섭은 청량리 뇌병원을 거쳐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 입원하여 정신불열증과 간염 치료를 받던 중 9월 6일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병실에서 홀로 숨을 거두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힙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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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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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이번 추석 연휴 때는 호암미술관으로 가 이중섭의 &lt;달과 까마귀&gt;를 한 번 보고 와야겠습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