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1109m: 수확 불변의 법칙(갈 6:7-9)

2008년 11월 9일 주일낮예배
본문: 갈 6:7-9
제목: 수확불변의 법칙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연애 불변의 법칙을 아십니까? 아마 공영방송은 아니고, 케이블 TV 방송 쪽인 것 같은데, 젊은이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남녀가 아무리 사랑을 장담하며 잘 지내고, 더 좋고 멋진 사람이 나타나 유혹하면 다 넘어간다는 겁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그 프로그램 제목을 카피한 겁니다. 수확 불변의 법칙입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추수, 수확의 불변 법칙을 본문을 통해 살펴 봅니다.

수확 불변의 제1법칙은 심은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본문 7절 하반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인과율입니다. 콩 심은 데 콩이,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이것은 인생사의 보편원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수확 불변의 법칙을 비웃고 무시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겠다는 사람은 없고 거두겠다는 사람만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심은 것보다 수천 배, 수만 배를 거두겠다고 덤빕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꾼들이 넘쳐납니다. 모두 불로소득의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입니다. 그런 개인과 사회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패가망신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보면,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결산을 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며 내가 강도인 줄 아느냐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두 달란트를 심어 두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심어 다섯 달란트를 거둔 사람에게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불변의 원칙을 존중하고 거기에 응답한 종들에게 상급을 내렸습니다. 이 수확 불변의 원칙을 거스르는 자를 본문은 ‘스스로 속이는 자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만하고 모욕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축복은 거저 주어지지 않고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뿌리고 심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축복은 보상이요 댓가입니다. 축복받을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축복은 우연이 아니고 반드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구제와 자선 이런 것들이 다 축복의 씨앗입니다. 이 수확 불변의 법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겁니다. 이 법칙을 존중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칭찬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만 하면 축복을 부어주시는 줄 알았는데요 라고 하면, 하나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탕주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수확 불변의 제2법칙입니다. 수확에는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다고 합니다.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기서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세상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다 성도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도 육체를 따라서 심는 자도 있고, 성령을 좇아 심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겁니다. 오직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인데도 늘 본능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물질에 연연하고 자기 기분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오직 육적인 삶에 투자합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많이 거두어 보았자 다 썩어질 것뿐입니다. 이것이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의 주문대로 뿌리고 심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소원, 비전대로 심습니다. 그래서 그가 수확하는 것들은 다 영생입니다. 썩지 않는 알곡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무언가를 날마다 열심히 심습니다. 휴식도 없이 때로는 몸이 상하도록 애쓰고 수고합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내 희생과 수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육체를 위한 것인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기껏 수고한 것이 다 썩어질 것이라면 그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제는 육체가 아니라 영생을 위해 심겠다는 다짐과 선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육체를 위해 뿌리고 심는 것은 안 됩니다. 참으로 자식들이 잘되기를 원하신다면, 더는 육체가 아니라 성령을 좇아 심으셔야 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것, 영원한 것, 신앙적인 것에 심고 뿌리고 투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영생을 수확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확 불변의 제3법칙입니다. 수확에는 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논농사든, 과수 농사든 수확에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심어 내일 거둘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급합니다. 얼마나 경박한지 모릅니다. 보리는 초여름이고, 벼는 가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표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표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앞뒤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전체 역사를 주관하시기에 차원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시간표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는데, 지금은 낙심한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선하고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인데도 피곤하고 낙심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까지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 죄인들의 거역한 일을 오래 참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오래 참으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심는 것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하지만,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부디 외롭고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낙심치 말고 묵묵히 성령을 좇아 심고 뿌리십시오. 수확의 날이 곧 옵니다. 올해도 영생을 수확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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