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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aragraph:p000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2008년 11월 5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0<br>
본문: 히 6:1-8</p>
<!-- paragraph:p0003 -->
<p>[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p>
<!-- paragraph:p0004 -->
<p><br>
오늘 본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우선 1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1-2절)고 합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이런 것들의 초보 수준, 유치한 수준을 버리라는 겁니다. 날마다 1학년으로 만족해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초 닦느라 세월을 다 보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좀 성장하라는 당부입니다. 회개, 신앙, 안수, 부활, 안수, 심판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가르침의 수준을 벗어나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하면서 히브리서 기자의 당부는 ‘짐짓 죄’입니다. 유치한 차원을 벗어나서 짐짓 죄의 문제까지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과 유사한 본문은 10장 26-27절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본문 6장 4절이하입니다: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성경에는 반드시 듣기 좋은 말씀만 있지 않습니다. 축복만이 아니라 책망, 신랄한 고발, 무시무시한 저주가 다 있습니다. ‘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난 널 미워할거야’ 라는 말은 이웃집 아저씨의 소리입니다. ‘야 이놈아 너 그렇게 공부 안할 것 같으면 차라리 나가 죽어라’는 말은 엄마, 아빠의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무섭기 짝이 없습니다. 8절 하반절 보십시오: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고 합니다. 10장 26-2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짐짓 죄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줄 잘 알면서도 짓는 죄를 가리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하는 죄가 짐짓 죄입니다. 이런 죄에는 오직 심판과 소멸할 불만 있습니다. 왜 이렇게 짐짓 죄가 무섭습니까? 10장 2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죄’라고 합니다(6절). </p>
<!-- paragraph:p0007 -->
<p>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 난해합니까? 우리가 짓는 죄는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니라, 다 아는 죄입니다. 우리가 짓는 80-90퍼센트의 죄가 다 짐짓 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게 우리에게 심각한 겁니다. 우리는 용서받지 못 합니까? 사실상 너무도 심각한 본문입니다. ‘너 이번에 대학 못 들어가면 나랑 죽자’는 얘기는 꼭 붙으라는 말입니다. 정말 대학 떨어지면 같이 죽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경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기에 성경에도 거룩한 협박이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당신이 택하신 선민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흥분하셔서 당장 요절을 낼 듯이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이 회개하면 그 분을 삭이고 용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변덕쟁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엄마와 같습니다. 아이가 말 안 들으면 때리기도 하지만, 또 마음이 아파서 안아주는 엄마와 같습니다. 신약도 예외는 아닙니다.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감정, 정서는 대표적인 게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짐짓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면 짐짓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받은 구원, 우리의 신분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절대적이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기에 우리가 짐짓 죄를 범했다고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하나님이 회수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짐짓 죄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짐짓 죄에 대한 엄중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소박하게, 피상적으로 보면 구원이 내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는 듯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읽으며 짐짓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자녀 신분에서 탈락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읽은 겁니다.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는 새롭게 하지 않겠다, 불사름을 면치 못하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협박하는 겁니다. 만일 본문을 짐짓 죄를 범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짓는 죄가 다 짐짓 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뒤에도 죄를 지으며 사는데, 그 죄가 다 악성 짐짓 죄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사르겠다는 말씀에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결코 미완성이거나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의 댓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어떤 변수는 없습니다. 이 대목이 바로 기독교 진리의 백미입니다. 짐짓 죄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로마서 8장 38절이하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9절의 ‘깊음이나’ 뒤에 짐짓 죄를 집어 넣으면 됩니다. 로마서 8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은 맹목적인 말씀이 아니라 법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과거와 미래의 죄값을 다 치르셨기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내게 죄를 물으실 수 없다는 겁니다. 짐짓 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악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착한 사람은 지옥가도, 예수 안에 있는 악당은 어쩔 수 없이 천국갑니다. 이제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잣대는 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내가 날마다 짐짓 죄를 범하며 살지라도 하나님이 내게 죄를 물으실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제 아무리 착하고 선하다 해도 그것은 상대적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선하고 착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부디 짐짓 죄에 대해 여러분이 좀 더 성숙한 이해와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악성 짐짓 죄를 날마다 범하며 살지라도 더 이상 하나님이 내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내게 베푸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보장하신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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