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9m 짐짓 죄(히 6:4-6, 1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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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9m
히 6:4-6, 10:26-27
짐짓 죄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또는 말씀의 선하심과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짐짓 죄는 용서를 못 받는다고 합니다. 용서를 못 받는 죄도 있습니까? 짐짓 죄가 무엇입니까? 죄인 줄을 알면서도 범하는 죄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짓인 줄 알면서도 범하는 죄가 짐짓 죄입니다. 시편 19편 13절에는 고범 죄라는 것도 나옵니다. 고범 죄는 고의로 범하는 죄입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범하는 죄이며,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범하는 죄가 짐짓 죄입니다. 이런 짐짓 죄를 지으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고 합니다. 26절 하반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심판과 맹렬한 불만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용서 못 받습니까? 6장 6절 하반절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역설해 왔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두 번 다시 정죄함이 없다고 했고, 구원이란 내 행위나 의로움, 믿음의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 주권의 은사이기에 그 어떤 죄도 절대 하나님의 구원을 무효화할 수 없다고 강변해 왔는데, 이게 무슨 초 치는 말입니까? 짐짓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니요? 이게 왜 중요합니까? 이게 왜 심각한 주제입니까? 우리가 짓는 죄는 다 짐짓 죄입니다. 몰라서 죄를 짓고 계십니까? 이게 진리를 거스르는 짓인 줄 모르고 죄 짓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다 알고 죄 짓습니다.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다 고의로 짓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조명을 받았고, 하늘의 은사도 맛 봤고,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우리는 죄를 밥 먹듯 합니다. 다 고범 죄요 짐짓 죄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지으면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그런가 하면 히브리서 10장 29절을 보면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습니까? 전제는 오늘 본문은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쟁이 많고 난해한 구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곁눈질만 하면서 쉬쉬하면서 이 말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정면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피해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기에 그렇습니다.
부모들이 흔히 자식들에게 하는 협박 가운데 ‘너 이번에 대학 떨어지면 너랑 나랑 죽자!’ 이게 무슨 뜻입니까? 대학 떨어지면 모자가 동반자살하자는 얘깁니까? 아닙니다. 필사적으로 대학에 합격하라는 얘깁니다. 너 그럴 거면 집에 들어오지마 라는 게 가출하라는 얘깁니까? 제대로 살라는 얘깁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문자를 보시면 안 됩니다. 뜻을 새겨야 합니다. 문자주의로 가면 성경을 오해합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백이 중요합니다. 여백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라에서 하지 말라를 들어야 하고, 하지 말라에서 하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위 문자주의에 빠지지 않고 그 말씀이 전달하려고 하는 본래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자칫하면 구원을 얻어도 짐짓 죄를 범하는 받은 구원이 취소된다고 오해하기 쉬운 텍스트입니다. 그러나 그런 법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짐짓 죄를 지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짐짓 죄는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기에 절대로 짓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두 번 다시 타락하지 말라는 거룩한 협박이지, 구원 철회나 무효화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아무리 못 되게 굴고 막 살아도 천하의 개망나니요 불효자식일뿐 하나님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신분이나 소속이 해소되거나 무효화되는 법은 없습니다. 불효자가 되지 말고 효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식답게 거룩하게 살지 못해도 날마다 짐짓 죄를 범하며 성화에 실패해도 천국을 못 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사람은 얼굴 들고 천국가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서도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짐짓 죄나 고범 죄를 피해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성화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신분에 걸맞는 모습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려도 여전히 심정적으로 공감이 안 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이 말씀에 진심으로 아멘하시며 확신하지 못하신다면, 우리 가운데 끝까지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짐짓 죄를 범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자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잘 믿다가 타락해서 결국 그 타락한 상태로 험하게 죽는 사람 말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가 잘 믿으며 살다가 죽을 때 하나님 욕하고 죽는 사람들의 경우 말입니다. 더 확실한 예는 구약의 사울왕 같은 사람, 신약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의 경우 말입니다. 누구보다 잘 믿다가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구원을 받았다가 취소당한 케이스가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구원 받았다가 짐짓 죄로 인해 구원을 취소당한 케이스입니까?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울왕과 가룟 유다는 그럴 듯 했고, 주인의 밭에서 다른 알곡들보다 더 웃자라며 돋보였으나 그들은 처음부터 알곡이 아니라 가라지였습니다. 알곡이 가라지로 돌연변이한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가라지였고, 보리밭의 깜부기였고, 벼논에 피였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못 맺고 베임을 당해 불에 던져진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선민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의심이 가십니까?
마태복음 13장은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에서 선택받은 땅은 옥토입니다. 그런데 씨는 옥토에만 떨어진 게 아닙니다. 길가에도, 가시밭에도, 돌짝밭에도 떨어졌습니다. 가시밭이나 돌짝밭에 떨어진 것도 싹은 틔웠습니다만 열매는 못 맺었습니다. 반드시 선택 받은 옥토에만 씨앗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길가에도 가시밭에도 돌짝밭에도 떨어집니다. 선택 받은 옥토가 아니어도 한 번 쯤 성령의 빛도 받을 수 있고, 하늘의 은사도 맛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내세의 은사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곳간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사울이나 가룟 유다가 끝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짐짓 죄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니었기에 결국 햇볕에 타 죽은 겁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어부들의 고기잡이 비유도 나옵니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나 막상 그물을 올려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지구온난화로 서해바다에 독성 노무라 해파리가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물에 든 것이라고 해파리로 매운탕 끓여 드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부들은 그 해파리를 버려야 합니다. 물고기만 걸러내야 합니다. 그물 안에는 물고기만 들어야 하는데, 불가사리도, 헌 신발도, 폐타이어나 깡통도 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잡스런 것들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물에 들었지만 고기만 남기고 다 버려야 합니다. 물고기가 타락해서 해파리가 된 게 아닙니다. 해파리나 불가사리는 처음부터 선택 받지 못한 잡것입니다. 그럼에도 물고기가 들어야 할 그물에 든 겁니다. 그래서 어부들이 그것들을 골라내 다 버린 겁니다. 사울이나 가룟 유다는 그물에 들었으나 처음부터 노무라 해파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갈 길을 간 겁니다. 물고기였는데 타락해서 불가사리가 된 게 아닙니다. 그물 속에 안 들면 좋겠지만 그런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그물 안에도 듭니다.
기억하고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 어떤 복병도 우리의 구원을 해치거나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이하입니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35절 이하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절 이하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다음에 여러분이 적어 넣으십시오. “짐짓 죄나 고범 죄나” 그리고 나서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 성경을 고쳐 적으십시오. 짐짓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구요? 주님의 피, 주님의 대속의 사역이 다른 죄는 다 사하는데, 짐짓 죄만큼은 안 된다구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것은 사기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막말로 짐짓 죄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죄도 정죄함을 안 받습니다. 주님의 핏값보다 더한 죄는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이번 휴가 때도 밭으로 거름을 져 올렸습니다. 농사짓자면 거름이 필수입니다. 거름 안 뿌리면 농사 못 짓습니다. 거름이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인분을 썼습니다. 요즘도 거름은 다 돈분이나 계분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발효가 안 되면 냄새가 고약합니다. 계분이나 돈분보다 더 지독한 지꺼기가 있을까요? 그런데 그걸 살아있는 과목이나 식물에 주면 그것보다 더한 자양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작물에 주면 어떻게 될까요? 더 잘 썩습니다. 살아있는 작물에 줘야 그게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 지독한 돼지똥, 닭똥이 둘도 없는 자양분을 이룹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지독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만들어 주십니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몰골을 내려다보며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내 이 못난 꼴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꽃이 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도리어 감사하며 주의 성호를 찬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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