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2m: 누가의 길, 데마의 길(딤후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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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일 주일낮예배
본문: 딤후 4:9-11
제목: 누가의 길, 데마의 길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사도 바울은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말년에는 더욱 외로웠습니다. 다들 그를 떠났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5절을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고 하는데, 아시아는 에게해 서남부를 가리킵니다.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입니다. 지금의 터키 지방입니다. 당시 거기에는 바울이 전도해서 개척한 교회가 많았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7교회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자 그 교회가 다 등을 돌린 겁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얼마나 외로우면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내게 오라고 합니다. 11절을 보면 마가까지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원래 마가는 바울이 그다지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마가를 데리고 갔으나 그 여행길이 힘드니까 마가는 중간에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마가를 바울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겨울 전에 오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는 주후 67년 가을에 썼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을 보면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이미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디모데후서를 쓰고 나서 네로 황제에게 목베임을 당합니다.
바울은 성공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바울은 실패한 목회자입니다. 바울이 왜 유명합니까? 글을 많이 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2/3를 썼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많은 편지를 쓴 이유는 문안이나 격려보다는 그가 세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쓴 목회서신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교회를 세웠는데 제대로 된 교회는 없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면 바울이 개척한 교회임에도 바울에게 네가 정녕 사도 맞냐며 대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실패한 목회자입니다. 그의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의 내용을 보면 더욱 그의 처지가 쓸쓸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는 빌레몬서에도 나오는데, 그는 바울과 함께 일했던 소중한 동역자입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도 데마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데마는 바울의 최측근입니다. 실제 초대교회의 한 문서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의 오른편에는 의사 누가가, 왼편에는 데마라는 바울의 친구가 있었다.’ 데마와 누가가 바울의 오른팔과 왼팔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난 겁니다. 얼마나 슬픈 얘기입니까?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바울에게 얼마나 모진 아픔이었겠습니까? 데마는 바울이 가장 절박할 때 그를 버리고 떠난 것인데,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떠난 이유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갔다는 겁니다. 세상을 등지지 않고는 주님께 나아갈 수 없고, 주님을 등지지 않고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도 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동경 때문입니다. 어느 자리에 가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 주님 망신에 나도 망신입니다. 내 모습이 너무 신앙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택했을까요?
저는 여기서 데마가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렸다는 말씀을 데마의 배교라 볼 필요는 없습니다. 데마가 바울을 버린 것이지 신앙까지 버린 것은 아닙니다. 데마가 택한 데살로니가는 당시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도시입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많았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지정학적으로 마게도냐의 여러 도시 가운데 로마의 박해로부터 안전했습니다. 거의 유일한 박해 무풍지대였습니다. 따라서 데마의 데살로니가 행도 배교보다는 나태한 신앙으로 후퇴한 것으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방관자의 자리로 전락했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는 편안한 신앙생활을 보장합니다. 헌신이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형교회의 80퍼센트 이상이 소형교회에서 이동한 기성 신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작은 교회는 고생스럽고, 희생을 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큰 교회는 시설도 좋고, 환ㄱ경도 쾌적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남 의식할 것도 없고, 유명 교회의 교인이라는 자부심과 체면, 존재감도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데마도 박해가 없고, 편안하고, 십자가의 강요가 없는 데살로니가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적 결단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의 결과라는 게 바울의 판단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럼 이제 바울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누가 있긴요. 누가만 있지요. 좌청룡 우백호처럼 좌우에 데마와 누가가 있었는데, 데마가 편안한 신앙생활을 택해서 데살로니가로 떠났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의 저자고,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직업은 의사입니다. 요즘은 성 누가 병원이 잘 안 보이는데, 전에는 장로님이 운영하는 병원은 거의 성 누가 의원이란 간판을 달았습니다. 누가는 전문직 엘리트였는데 그는 안이하고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가장 고생스러운 고난의 길을 스스로 자처했습니다.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가장 고급스러운 헬라어입니다. 보통 코이네 라는 서민의 헬라어가 아니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고급스러운 문장입니다. 그 많던 사람이 다 떠나고, 마지막엔 왼팔 노릇을 하던 데마도 떠났지만 누가는 끝까지 바울의 곁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의회에서 임직자를 선출합니다. 데마가 아니라 누가와 같은 동역자가 선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믿기가 힘들고 고생스럽고, 세상이 미혹하고 나를 꾄다고 데마처럼 달아나지 마십시오.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두 가지 길입니다. 데마의 길과 누가의 길입니다. 로마로 가는 길과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 넓은 길과 좁은 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이쯤에서 점검해 보십시오. 로마입니까? 데살로니가입니까? 데마입니까? 누가의 길입니까? 부디 습기찬 로마의 지하감방에서 호소하는 바울의 간곡한 권면을 들으시고 다시 그 고난의 자리로 돌아오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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