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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8년 11월 2일 주일오후찬양예배<br>본문: 행 9:26-30<br>제목: 권위자(勸慰者)</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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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p>
<!-- paragraph:p0003 -->
<p><br>이 본문은 바나바에 관한 말씀인데, 바나바에 관한 최초의 증언은 사도행전 4장에 나옵니다. 4장 36-37절입니다: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는 본명이 요셉입니다. 바나바는 별명입니다. 또 고향이 구브로, 즉 사이프러스 섬입니다. 그리고 땅을 많이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 사람을 바나바, 곧 ‘권위자’라고 부른 겁니다. 권위주의 할 때 권위가 아니고, 권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12장 8절을 보면 성령의 다양한 은사 가운데 권위의 은사가 나오는데,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권사 투표가 있었고, 세 분의 권사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 권사라는 직분은 없습니다. 집사, 장로는 있어도 권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권사가 어디서 온 직분인가 하면 바로 이 권위의 은사에서 오는 직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권위자라는 별명을 가졌던 바나바야말로 원조 권사입니다. 우리 장로교는 여자만 권사가 될 수 있지만, 감리교는 남자도 권사가 됩니다. 왜냐면 원조 권사인 바나바가 남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초대 권사라고 볼 수 있는 바나바의 사람됨과 신앙적 인품을 살펴보겠습니다.</p>
<!-- paragraph:p0004 -->
<p>어떤 사람이 권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까? 우선 바나바는 남을 믿고 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에게 소개하고 신원보증을 선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사도 바울의 후견인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은인입니다. 사도행전 9장 26-27절입니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어제까지만 해도 바울은 잔혹한 기독교 박해자였습니다. 악명높은 포악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 자기가 회심했다고 합니다. 그걸 누가 쉽게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고 예루살렘에 찾아와 개종했다고 하니 누가 그를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틀림없이 기독교 조직을 발본색원하려고 위장 개종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바나바가 사울을 대변했습니다. 그 결과 28절을 보면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고, 예루살렘 교회를 출입했습니다. 그리고 29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담대히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그와 변론하고 그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어쨌든 예루살렘 교회가 사울을 받아들이고 그를 믿게 된 것은 바나바의 덕입니다. 바나바만큼은 사도들이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이처럼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권사도 바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처럼 교인들의 후견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 못 믿어도 권사는 교인들을 신뢰하고 감싸주고 두둔해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5 -->
<p>바나바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해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의 목회자로 파송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사도들의 신임을 얻은 살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가 열심히 목회한 결과 사도행전 11장 24절을 보면 큰 무리가 더했습니다. 바로 그때 자기 한계를 느끼면서 누구를 떠올립니까? 바울을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때 길리기아 다소, 즉 그의 고향에 가 있었습니다. 나보다 바울이 더 잘 감당하리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다소로 가서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옵니다. 거기서 1년 동안 바울과 공동목회를 합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자기 한계를 잘 알고, 남의 능력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13장 초반까지는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나옵니다. 항상 바나바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니까 13장 초반까지는 지명도에서 바나바가 더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바나바와 바울’에서 ‘바울과 바나바’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바나바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바울만 남습니다. 이미 바나바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자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울이야말로 큰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자신을 양보한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겸손하고 정직해야 가능합니다. 이런 훌륭한 인품을 바나바는 갖고 있었습니다. 권사는 무엇보다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직분이기에 이런 겸손함, 정직함, 겸허함이 꼭 필요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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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또한, 바나바는 언제나 교회의 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바나바가 만약 자기의 명예나 유익을 챙기는 사람이었다면, 그 먼 다소까지 가서 바울을 데려왔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헌금할 때도 그랬습니다. 바나바는 땅 부자였습니다. 제일 먼저 땅을 팔아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런 바나바의 결단을 보고 거짓으로 따라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아무나 못합니다. 나의 명예보다 언제나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권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야 어떻게 되든 내 자존심과 명예만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목사나 장로가 자기 자존심을 지키느라 교회를 쪼개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 감리교의 꼴을 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교단이 쪼개지게 생겼습니다. 감독이 두 명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교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필요하면 물질도, 필요하면 자기 몸도 바쳤습니다. 목회자로서 훌륭했고, 또한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면 모셔올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교회가 발전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오늘 피택 받은 분들은 원조 권사인 바나바를 본받으십시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장하는 데 일조하기를 기원합니다.<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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