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2m 카리스마(롬 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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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2m
롬 5:6-15
카리스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저는 출판사를 두 개를 갖고 있습니다.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하나는 신학전문서적을 출판하겠다는 생각으로 <카리스마>로 지었고, 하나는 신앙인을 위한 교양서적을 내겠다고 생각해서 <우슬초>라고 지었습니다. 카리스마에서는 몇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우슬초에서는 아직 책을 낸 적이 없습니다.
카리스마가 무슨 말입니까? 저의 출판사 이름입니까? 교회에서도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만, 사회에서도 많이 씁니다. <카리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 가까이에 노인병원을 개원했는데, 그 병원 이름이 카리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또 <카리스마타>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게 다 그리스말입니다. 사실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의 고유 용어들입니다. 사회에서 쓰는 카리스마는 누구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그 사람의 존재감, 권세, 권위 등을 뜻합니다. ‘아 저 사람 카리스마가 있다.’할 때 쓰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원조 카리스마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카리스마를 우리말로는 <은사>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가 카리스마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카리스를 다 은혜로 번역했습니다. 카리스마타는 카리스의 복수형입니다. 은사들, 은혜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용어들이 자주 나옵니다. 본문 15절에 나오는 ‘은사’, ‘은혜’라는 단어도 헬라어 원어로는 ‘카리스’입니다. 15절에 나오는 ‘선물’은 원어로 ‘카리스마타’입니다. 복수형입니다. 성경에는 이 두 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카리스, 카리스마, 카리스마타는 다 비슷한 말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선물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의 특징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이며 영원합니다. 세상이 주는 선물과는 같지 않습니다. 누구도 범하거나 유린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세가 카리스마에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원초적인 카리스마의 뜻입니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이고 누구도 범하거나 유린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권세가 카리스마입니다.
그러면 카리스마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카리스마의 본질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희가 언제, 어떤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 때 구원받았습니까? 우리가 어떤 행색일 때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절대적이며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우리에게 임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었을 때입니까? 우리가 펑펑 울며 회개했을 때입니까? 우리가 뭔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6절의 표현대로 하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입니다. 우리가 전혀 경건하지 않을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한통속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입니다. 8절의 표현대로라면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였습니다. 10절로 표현하면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로 살 때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고 했습니다. 원수지간인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어떤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권적인 당신의 카리스마를 발동해서 우리를 찍어 넘겼다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기도한 적도 없고, 영접기도를 한 적도 없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당신의 카리스마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고, 가장 조건이 최악일 때 하나님이 당신의 카리스마를 베푸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사요 카리스마입니다. 내가 가진 게 있었다면 연약함, 경건지 않음, 죄인됨, 하나님과 원수됨 뿐이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도 구원을 얻을 만한 조건을 갖춘 게 없었고, 저주받고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였는데, 하나님이 카리스마로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카리스마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카리스마를 베푸시기 위해 정작 당신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거의 매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후렴구처럼 나옵니다. 우리에겐 값없이 은사로 구원을 베푸신 반면에 당신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이게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 카리스마의 불가사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가장 형편없을 때, 우리의 사정이 가장 열악할 때도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좀 못나게 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 짓는다고 새삼 우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전혀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구원하신 하나님이 새삼 우리에게 베푸신 당신의 카리스마를 회수하시지는 않습니다. 구원의 카리스마는 영원하며 무효화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범한 잘못이나 죄가 아무리 크고 파괴적이어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핏값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이 모양인데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까? 이렇게 사는데도 하나님이 구원을 회수하시지 않을까? 회의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대한 모독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끊임없이 죄책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이 카리스마에 대한 이해가 약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카리스마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직도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왔다 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오락가락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내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하고 내가 기도하고 착하게 살고 헌금하고 헌신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상이요 대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카리스마입니다. 전혀 무자격자인데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게 구원입니다. 믿음은 그 다음입니다. 믿음은 구원 다음입니다. 구원보다 먼저가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구원받았기에 믿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만 불가항력적으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의 사울시절을 기억해 보십시오. 바울의 유대교도 시절을 기억해 보십시오. 바울이 예수를 믿으려고 노력했습니까? 오히려 기독교를 박해했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압도적이고 강권적인 하나님의 카리스마에 자빠졌고, 전격 회심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케이스입니다. 믿으려고 한 적도, 구원을 열망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당신의 카리스마로 구원해 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카리스마를 얻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 카리스마에서 제외되었다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못 믿는 이유는 카리스마의 수혜자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을 포기하고 싶다고 발버둥 쳐도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끌고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질질 끌려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예수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 어떤 뜻입니까? 이런 성경의 표현들은 다 무엇입니까? 틀림없이 믿어야 구원 얻는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표현의 의미를 바르게 새기셔야 합니다. 그것은 성서만의 독특한 수사학입니다. 이것은 해가 진다 해가 뜬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문제제기도 없이 일출일몰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그게 맞는 말입니까? 해가 뜨고 해가 집니까? 아닙니다. 지구가 뜨고 지구가 집니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통해서 뜨기도 하고 지는 겁니다. 해는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할 때 해가 뜨고 진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현상학적으로 표현하는 게 편합니다. 정서적으로도 빨리 전달됩니다. 천문학적인 사실로 얘기하면 복잡해집니다. 많은 말이 더 필요합니다. 이와 같습니다. 구원이 먼저고 믿음이 나중이라고 하면 복잡해집니다. 이것은 교리고 신학입니다. 이걸 갖고 전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단은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전도하는 겁니다. 일단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구원과 믿음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겁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집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리 안 믿으려 해도 믿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카리스마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게 임한 하나님의 카리스마에 대한 응답이요 감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구원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은 이미 받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감사하십시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을 통해 그 보상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입니다. 복음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카리스마는 일방적이고 압도적이며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불가항력입니다. 이게 소위 선택, 예지, 예정이라는 교리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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