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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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라덴이 보냈다(?)는 볼라벤과 덴빈의 연타석 강타로 인명은 물론 특히 어촌 농촌의 피해가 막심한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1년 전부터 벼르던 제주도 여행을 망쳤습니다. 한라산 트레킹에 잔뜩 부풀어 휴가만 기다렸는데 일정이 정확히 볼라벤과 겹치면서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살이라는 것이 어차피 크고 작은 굴곡을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때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움쭉달싹도 못할 지경의 곤경에 처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맞은 자리를 다시 맞는 설상가상의 아픔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때 자신의 한계와 무력감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예상치 못한 덫에 걸려든 기분이며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옥죄는 어떤 참담함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참혹한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슬퍼하고 신음하게 되며 또 어떤 이들은 그 번민과 고독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해 폐인이 되는가 하면 또 용케 벗어나기는 해도 그 아픔이 모져 평생을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요셉의 인생 역정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나섰던 요셉, 처음에는 그까짓 일쯤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쉽게 만날 줄 알았던 형들의 모습은 광야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것은 실로 막막함이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는 방황이자 그가 생애 최초로 겪었던 한계상황이었으며 철없는 유년시절을 마감하고 성년으로 들어가려는 길목에서 만난 스핑크스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도단으로 가서 만난 형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구덩이에 처넣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간 꼴이 됐으며 이곳저곳을 헤매며 겨우 찾아낸 푯대가 도리어 올가미가 되어 그를 천길 벼랑으로 내몬 경우가 된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채색옷이 벗겨지고, 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공허함 속에서 희망의 촛불은 꺼져가고 분노의 발톱은 그의 심장을 할퀴고 있었으며 어디에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죽음 같은 고독만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는 이제 철저하게 혼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런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뼛속까지 깊이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운명의 시간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우리의 기도는 깊어지며 우리의 영혼은 애타게 하나님을 향해 달려갈 줄을 알게 됩니다.
요셉이 그 구덩이에서 나와 다시 노예로 팔려 간 얘기며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얘기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성숙함으로 채워진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단의 구덩이에 빠져 처절한 고독과 싸운 경험과 그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었던들 과연 그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방황과 고통의 시간은 분명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또 그것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주는 은총의 시간임도 잊지 말 일입니다. 만약 그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끝까지 성숙의 아픔을 치르지도 않고 오직 열매만 따겠다는 철없는 어린 아이로 남게 될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자녀들이, 또 우리 자신들이 들판에서 헤매다 구덩이에 빠졌다고 느껴질 때 너무 상심하거나 그걸 오로지 불행이고 절망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런 시간이 없다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삶의 보람과 기쁨을 위해 주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축복의 기회임을 믿으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은 슬픔과 분노의 껍질에서 해방되어 감사함으로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래 없는 폭염과 잇단 태풍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벌써 9월 첫 주일, 가을의 초입입니다. 우리의 방황과 크고 작은 아픔이 올해도 아름다운 축복의 씨앗이 되어 찬란하고도 풍성한 기쁨으로 열매 맺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