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9m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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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m
롬 6:15-23
그럴 수 없느니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지난 주일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를 믿으면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당장에 천사가 되거나 성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기 전보다는 좀 더 선하고 착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우리의 고민과 좌절이 있습니다. 그 점 때문에 과거 바울도 탄식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내랴?” 그런데 바울은 오랜 자기 분열과 모순 끝에 극적으로 깨달은 게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우리를 죄의 법, 사망의 법, 곧 율법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지어도 누구도 우리를 단죄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죄인이라 규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법이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못된 짓 한 것은 맞는데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법을 폐기 처분하였습니다. 이제는 오직 성령의 법, 생명의 법만 해당될 뿐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죄를 짓지 않는 게 아니라 계속 죄를 지어도 정죄할 법이 없기 때문에 이제 더는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교리적으로 칭의(稱義, justification)입니다.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의로워서 의롭다고 불러주는 게 아니고 의롭지 않은데도 의롭다고 불러준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도그마입니다만, 기독교의 절대 진리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십자가 아래에, 어린 양의 피가 칠해진 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까? 왜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죄를 짓는데도 의롭다고 칭해주는 겁니까? 주님이 그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대신 죗값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게 대속(代贖)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당할 심판을 미리 겪으신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누구도 우리를 더는 단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죗값을 물어 우리를 심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혜사입니다. 즉 우리의 변호사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죗값을 물으시려고 하면, 주님이 우리 앞에 나서서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을 내세우며 말입니다. 그렇데 주님이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일에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죄를 지었는데, 이제는 안심하고 괴로움을 느끼지 않으며 죄를 지어도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음 놓고 지를 지어도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문제를 제기합니다. 본문은 마음 놓고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또 무엇입니까? 정죄함이 없다고 해놓고 안심하고 죄를 지으려고 하니 그럴 수 없다니요?
본문 15절입니다.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6장 1절 이하도 보십시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정죄함이 없다고 하면서 왜 죄에 거하면 안 된다고 합니까? 거룩함 때문입니다. 19절과 22절을 보십시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제 죄는 내 구원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변수가 못 됩니다만, 그러나 성화에는 영향을 미칩니다. 성화는 구원 받은 백성이 추구해야 할 지상목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국에 갈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녀의 소중한 과제는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게 되는 성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불과 보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입니다. 길어도 한 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40년간 광야를 유랑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묻은 때를 다 벗으라는 것입니다. 성화를 위한 말미를 주신 것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은 보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고의로 광야에서 40년간 뺑뺑이를 돌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 백성에 걸 맞는 모습으로 거룩해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을 때 하나님이 곧장 천국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시간,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에 절어있기 때문에,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죄의 잔재가 많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시간입니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성화되지 않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부끄럼을 당합니다.
성화(聖化)는 무엇을 결정합니까? 영원한 천국생활의 영화를 결정합니다. 성화에 실패한다고 천국 못 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보상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에 의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은혜가 아니고 보상입니다. 성화의 대가가 영화입니다.
천국은 평준화가 아닙니다. 천국은 철저히 차등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고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똑같은 수준의 천국 영광을 누리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 만큼 주님을 위해 헌신한 만큼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으로 변화된 만큼 그 수준이 다른 영광을 누리며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공평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뿌리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도 그저 100년 전후입니다. 우리도 내일 모레면 이 세상을 다 떠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한 곳입니다. 천국의 영원한 영광이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의 성화로 결정됩니다.
성화는 순수 내 몫입니다. 물론 성령이 내게 힘을 주시고, 격려하시지만, 어디까지나 성화의 주체는 내 자신입니다. 주님이 대신 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내 의지를 발동해야 하고, 내가 노력해야 하고, 내가 두 발로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주님을 헌금 많이 하고, 시간을 할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또 그런 희생의 현장이나 순간을 모면했다고 해서 안도하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다 카운트하십니다. 호리도 남김없이 훗날 결산합니다. 그게 중요하고도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누구도 나를 정죄하지는 않지만, 성화를 위해 더는 죄에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을 이 땅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순간도 성화에 소홀하거나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절대 순간과 영원을 바꾸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치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의 선택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내게 말미를 주셨을 때, 죄를 멀리하는 게 성화의 길입니다.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이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입니다. 성경은 2/3가 다 성화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도덕과 윤리는 다 성화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도덕과 윤리는 율법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은 도덕과 윤리를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자는 것이나, 신약의 도덕과 윤리는 율법이 아니라 성화를 위한 규범입니다. 그래야 훗날 천국 가서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내가 성화된 만큼 영원히 누릴 영화로운 상이 천국에 있습니다. 천만 년 동안이 아닙니다. 영원입니다.
성화를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리십시다. 자신의 영원한 영화를 관리하십시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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